바다는 시리딘 시린 바람을 일으킨다.

바다는 슬프고 슬퍼 차갑다.

시퍼런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봄볕과

가슴 저리도록 푸른 바다가 보고 싶었다.




여수항을 출항하여 금오도 함구미까지

배로 이동하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30십여 분 남짓.

그러나 금오도는 돌산에서 뱃길로 어지간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택시를 타기 전까지 그 사실을 몰랐단 말이다.

선실 바닥은 땀에 흥건히 젖을 정도로 따뜻했고

부족한 수면 때문이었던지 금세 깊은 잠에 빠져 버린다.

금오도로 향하던 배는 중간 개도에서 잠시 멈춘단다.

바다에서 보는 아침 일출이 장관이다.

생각해 보니 어디서 많이 듣고 세뇌당했던 개도 아닌가!

올여름 이곳 개도에 오겠지?


하늘은 흐리다가도 맑게 개면 그만이지만,

그리움 가득한 마음 울적해지면 어떡하나 싶어지는 찰나

목적지가 보인다.

금오도와 가까워질 무렵부터는 어둠 속으로

섬 그림자가 어슴푸레 줄지어 있더니

어느새 바다에 풍덩 빠져버린다.

바다에서 건져 올려진 섬은

봄 잠에 깨어 웃고 있고

스스로 아름다운 꿈이 되어 떠있다

수면 위로 태양이 뜬다.

어둠은 걷히고

하늘은 서서히 맑게 열리고

바다색도 심상치 않다.




철부선이 도착한 곳은 함구미 

곧바로 택시를 타고 비렁길 3코스 출발지 직포로 이동한다.

어디서 출발해서 무엇을 타고 왔냐는 택시 기사님 질문에

우리 일행은 들뜬 마음, 밝은 목소리에 힘을 실어

이구동성으로 대답한다.

여수항인데예..........^^;;

비러머글...

출발지를 잘 못 선택해서

배로 이동하는 시간과 뱃삯이 두 배로 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

나를 향한 여러 시선에 몸과 마음이 아주 따갑다.

그래도 부족했던 잠은 잘 잤지 않은가?


잠시 귀를 막고 그들의 시선을 피하기로 한다.

바다로 내려오는 햇살이 참 곱다.

택시는 구불구불한 도로 위를 시원스레 달리던 중에도

배를 잘 못 탔다고 열변을 토하는 중이다.

이제 제발 그만 했으면....

택시기사의 운전실력은 아주 능숙하다.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인지 알 수 없지만

운전 중에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돌변한다.

그러더니 육두문자를 쏟아낸다.

<매주, 아기 콩나물, 속 빈 머리, 강아지 새끼, 아기염소, 홀로 사는 아기....>

전라도 특유의 어감과 어조로

감칠맛 나게 욕을 퍼붓는다.

내가 욕을 잘 못 해서 인지

듣는 동안 내 속이 다 후련하다.

택시비 2만 원을 지급하고

떠나는 택시를 원망한다.

차라리 몰랐으면...

이것도 힐링인가?

젠장...



바다로 이어진 비렁길

오래된 동백나무에서 떨어진 동백꽃

붉은 꽃잎에 취하는 봄이다.



금오도 비렁길 3코스

직포에서 4코스 심포리까지 이어진 봄 길은 따스했다.

바다는 나를 끌어당기고

상괭이 무리는 자유로운 몸짓으로 파란 하늘을 날고 있다.



동백나무 숲길에

마음이 갇힐 뻔하다가도

하늘길 열어주는 바다가 있어

봄을 보고

마음의 불꽃이 일었음을 안다.  



희뿌연 연무 때문인지

수평선은 보이지 않지만

바다가 넓다는 것을 알겠고

가까이에 다가가 보지 않았지만

바다가 푸르다는 것을 알겠다.



멀리 보이는 4코스 학동마을과 

5코스로 넘어가는 심포리 마을 포구까지

오래 보고 싶었지만

오래 만나지 못했다.

잘 있으라는 말

잘 가라는 말

그게 전부였고

파도가 전부였고

바람이 전부였다.



비렁 끝에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나약한 존재로 여겨지던 나.

나는 힘 없지만,

감성으로 들어찬 마음은

큰 사랑과 큰 힘 있으리라 믿는다.

내 그리워하는 이

내 사랑하는 이

햇살 가득하여라.



등에 짊어진 저 두툼하고 묵직한 배낭에는

도토리가 가득 들어 차 있다.

가깝다는 것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말이다.

그래도 아직 갈 곳이 멀다.

간지러움은 스멀거리고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도토리를 꺼내 먹으며 고됨을 삭힌다.

그리고는 다시 걷는다.

발도. 심장도.

이의제기를 않는다.




낯선 바다, 낯선 바람 속으로 떠밀려와

눅눅해지고  먼지 낀 일상의 껍데기를 벗겨내

새로운 바람으로 씻어주고

살아있음의 신선한 호흡을 다시 채우는 일



그것은 자연으로 돌아와

그 안에 녹아드는 것이고

나를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학동마을 방파제에서

파란 바다와 하늘을 올려다 본다.



봄이 오는 바다 여수 금오도

울창한 동백숲에서

나도 꽃이 되어 꿈꾸어 본 날



비렁길 걷던 그날은

햇살은 포근하고 파도는 일렁이며

눈과 귀, 가슴이 즐거움으로 가득하였도다.



에메랄드빛 바다는

꽃망울 터트릴 기세로

봄빛을 덧입고

꽃진 자리를 메꾸며 다시 돋아났다.

맹렬하게 번져오는 길옆 초록의 행진에

내가 바다가 되고 숲이 된 날이다.


고상한 척하는 사람은

 비렁길 자연 앞에서

지식 같은 것은

접어 두어야 한다.

침묵 속에 존재하는 자연의 언어

바람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에메랄드빛 해안가  

동백 숲을 걷는 동안에도

청푸른 바다 비렁길을 걷는 동안에도

침묵 속 자연의 언어와 웃음소리는 크다.


숲에서 풍겨오는 봄 내음과

코끝을 자극하는 생명의 냄새가 좋은 날

금오도 비렁길을 걷는 그날은

진짜 봄날이었나 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