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에서
바람 소리
얼음 녹는 소리에
눈을 감는다.
송광사로 향하는 흙길의
사철 푸른 대나무
흔들거림이 좋다.
비포장 흙길을 걷는다는 건
일상에서 벗어났다는 것이기도 하다.
흙먼지 한가로이 날리고
마른 낙엽 위로 옮겨놓는 발걸음마다
빛바랜 낙엽은 두껍게 깔렸다.
바스락 소리에 마음은 흥이 돋고
들썩이는 간질거림으로
나는 산길을 걷고 있다.
오를 때마다 늘 새로움을 안겨 주는 길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을 때
눈 오는 날의 텅 빈 오후처럼
외로움은 휘장처럼 몸을 휘감았다.
설 명절 대체 휴일 마지막 날
이른 새벽부터 나는 순천 조계산에 있었다.
선암사 승선교를 넘어 송광사로 향하는 내 발길은
겨울이지만 포근한 봄볕을 밟느라 정신없다.
비닐하우스 안에서 먹는 보리밥은
봄 냄새 가득이다.
새소리가 들리면 새들이 날아다니며
봄을 알리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고
양지바른 곳에 돋아나는 새싹과
응달진 바위틈에서 아직 녹지 않은 얼음은
돌아가던 물레방아도 멈추게 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계곡 물소리가 참 좋다.
낙엽 져서 앙상하던 고로쇠 가지는 봄을 준비하며
한창 물을 모으느라 바쁘다.
불일암을 향했다.
텅 빈 오후에 흩날리는 꽃잎처럼
내 마음 알아줄 누군가를 만나야 했다.
응어리진 가슴
미련한 마음
엉킨 발걸음 풀고자 찾았던 곳
후박나무 앞에 놓여진
그 의자에 앉고 싶었다.
그러나 늦은 오후는 나를 반겨 주지 않았다.
조용한 산길을 오르내리면서
자연에서만 배울 수 있는 인내와 삶의 숭고함
가슴에 안고 산을 내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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