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그립다고 써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윤동주 <편지> 중
<산행 개념도>
어둠과 안갯속을 헤치고
초행길에 들어섰을 때
나는 아무것도 생각나질 않았다.
눈에 보이는 건 어둠뿐이고
내가 딛고 서 있는 발아래는
차가운 콘크리트만 보일 뿐이었다.
대월리 마을 입구에 들어섰음에도
구름에 갇힌 하늘은 열릴 기미조차 보이질 않는다.
산중에서 들리는 기이하고 기분 나쁜 귀신새 호랑지빠귀 울음소리만
정적을 깨우기 바쁘다.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봄철
임을 찾는 소리이거늘
비워내지 못한 마음 때문인지 스산한 기운과 함께
새벽은 생명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눈이 흐릿해진다.
미간이 순해지며 멀리 있던 것들이
어느새 가까이 와 있는 느낌
버릴 게 없는 산과 사람이다.
저 암봉 어딘가에 코끼리 바위도 있고
악어 바위도 있다던데
나는 아무것도 만나지도 보지도 못했다.
다만, 구름에 뒤덮인 선경만 보았을 뿐이다.
산에도 꽃은 핀다
가끔은 깊은 산 바위틈에 피어난 저 꽃처럼
진한 외로움도 느껴야 한다.
이곳이 어디인지 모를 길
어디로 가고 있는지조차 모를 산길
분명 마음은 북으로 향하는데
발길은 다시 남진이다.
구름에 덮인 숲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산.
그래서 자꾸 헤맸는가 보다
무엇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시간은 왜 우릴 지체하게 하는지
낮은 곳에서 높은 곳을 향해 오를수록
의문이 풀리기 시작한다.
바람은 아무렇게나 떠 있던 구름과 나무를 잡아채고 훝더니
봉우리마다 구름을 휘감아 놓는다.
그날과 같은 바람이 다시 불어온다면
다시 그 안에 머물고 싶다.
집 가까이에 있는 산을 오르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와
온종일 산길을 걸었다고 하면
누가 이해할 것인가.
그러나 근질거리는 다리 통증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고
차가워진 마음 따뜻해지는
그곳으로 다시 가고 싶다.
그날 그 바람이 불어준다면....
하늘은 파랗게 될 수 없는가 보다
포근한 햇살이 그리웠던 날이었는데
몸을 차갑게 때리던 봄비는
후두둑 여린 나뭇잎을 때려댄다.
나는 산의 여백 한가운데에 있고
스쳐 지나가는 뜻하지 않은 것과 마주쳤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무심함은
스침이 빚어놓은 순간의 꽃이다.
수많은 독백과 찬사가 쉼 없이 이어진다.
느린 걸음,
내 눈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은
향기로움이요.
짙은 그리움으로 남아 버렸다.
봄날, 바람이 지나간다.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감각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
우리보다 먼저 다녀간 구름이 산을 적셔 놓는다.
월각산에 있던 그 날은 하얀 바탕의 일상이었다.
뾰족한 문필봉과 마주보고 있는 주지봉을 향해 행진하던 일행 모두는
마음이 아름다워지고 싶었을 것이다.
산능선에 펼쳐진 연초록 신록을
맑은 눈으로 보았을 테니 말이다.
기억하지 못할 바위틈 어딘가에 수줍게 피어난 저 꽃도
계절의 순서에 맞춰 피어났지만
빠르게 싹을 띄우고 꽃을 피워내며
불어오는 바람에 더 용감해지고 싶었을 거다.
봄 다운 봄 날씨
봄에만 볼 수 있는 색감
그리고 그것은
아련한 봄에 대한 추억이다.
봄나들이에
무작정 산으로 갔던 그는
연신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더라.
올 봄도 아름답다고 말을 했고
감탄사와 노랫말이 절로 나와
옆사람 앞사람 눈웃음 짓게 하던 그는
참 젊어 보이더라.
매서운 한겨울이 지나고 봄이 또 찾아왔다.
나는 너의 지고지순한 아름다운 매력에 쉽게 빠져버렸다.
향긋한 봄이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좋다.
하얀 도화지 위에
한 폭의 풍경화를 그려 놓았는데
어느새 그 안에 내가 있다니
산과 마주한다.
저 앞산을 보며 집착하지 말아야 하는데
또 다음을 기약하고야 만다.
너의 특별함
너의 봄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 몰랐기 때문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고
봄의 화려함에 몸이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세월도 참 빠르다.
빠져가는 머리카락
주름진 얼굴
봄이 와서 그런가.
산에 다녀온 뒤로 밤늦도록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낮에는 춘곤증이 밀려와 졸리웁다.
그래도 이 봄을
마음에 새기는 흔적 하나 남기고 가야겠다.
온몸에 봄볕 뿌려대는 오늘
눈이 부신 봄날이다.
꽃들이 참 많이도 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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