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덕유산,

그 산에 가고 싶었다.

봄부터 몸짓 숨기며 바라보았던 그 겨울이 보고 싶었다.
덕유는 겨울을 , 온몸 시리운 겨울로 변심할 것을 작심했나 보다.

겨울바람은 키 작은 나뭇가지와 들풀을 잡아채기 바쁘고

땅바닥에 붙어 있는 뭇 생명은

흐트러지지 않을 것을 맹세라도 했는지

차갑게 얼어버린 척박한 땅에 견고히 뿌리내렸다.  


 

 

2차 덕유에 들어선다.

지난번 하산했던 황점마을에서 다시 시작이다.

겨울은 참 냉혹하다.

일출을 바랐건만 겨울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빈틈 하나 보이지 않고 물러서질 않는다.

 

 

어둠 어딘가에서 불어대는 바람 소리에 산이 흔들린다.

때론 내 몸조차 가누기 힘든 바람,

피할 수 없는 돌풍이 온몸을 쑤셔대듯 불어대지만, 등을 돌리기 싫다.

아픈 곳도 내 몸이건만 쭉 잡아채 내던지고 싶은 마음

삿갓재에서 무룡산에 도착하기까지

내 정신인들 온전하였으랴.

 

 

기별도 없이 봄과 여름이 떠나더니 어느 스산하게 긴 날은 가을비로 어지간히 적시고
이제 얇은 내복 빈틈으로 살을 에는 찬바람 들이치는 겨울이다.
겨울은 마음의 멍을 만들고 마구 헝클어진 채 굳어 있다.
삿갓재 대피소 취사장 한쪽 거울 앞에 서 있는 이는 누구일까?

내 마음 한쪽에 새 자리를 폈을까?

 

 

 

까닭 모를 외면으로 눈시울 붉혀질 때면

손등까지 흘러내린 눈물도 얼어버린다.
뜨거운 입김으로 떼어 보려 하지만

아무 미동이 없다. 

하얗게 하얗게...

얼어붙은 장갑 손끝을 붙잡고

손가락 깨질 것 같은 고통을 참으며

하얀 눈길에서 다시 헤매고 있다.

눈 오는 날 산길은 외로워라

내 발이 내 마음이 다치지 않았으면...


 

 

앞사람

따라갈수록 또 따라갈수록 

 먼 썰물이었다가

돌아와서 반겨주는 밀물이었다가

겨울은.....
그 숨길 막혀가던 눈구덩이 속에서도

지나고 나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을 떠올리고

소중한 기억을 꺼내 놓는다. 


 

 

숲의 전령이 밀려온다.

손을 뻗어 나를 잡는다.

한 걸음 한 걸음

알지 못해 들어갔던 저 숲을

뒷걸음하며 빠져나온다.

 

 

겨울의 하얀 피부...

봄이 오면 겨우내 흐트러진 머리카락 다듬어 밖에 나가리.
 이목구비 훤칠한 얼굴로 포근한 바람을 안고 연둣빛 들판에 서 있고 싶다.
햇살로 구워진 진한 갈색 피부로 여름 해변을 거닐고 싶은 날은 오려나...
나무에 얹혀진 하얀 멍울
껴안아 곱살스레 쓰다듬고 싶지만

에잇, 나도 얼어버릴라......

 

 
한여름 한신지곡에 발을 담그고

등허리 시원한 물줄기로 몸짓 적시며 

함박웃음으로 피로를 풀던 그 여름을 이곳에 옮겨 놓는다면...

소슬한 바람에 모두 얼어버리겠지.

 

 

 

중봉으로 향하는 길이 아쉽다.

춤추는 운무와 파란 하늘, 창백한 겨울을 기대했는데

차가운 바람만 매몰차게 불어댄다.

하얀 눈꽃은 봄의 철쭉을 대신하고

안개처럼 깔린 구름은 바람의 손짓으로

산을 포근히 뒤덮는다.

 

 

 

난 당신이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천 년을 살고 다시 천 년을 죽어 지내는 주목이라 하였던가.

숲의 정령이라 믿고 싶다.

 

온종일 우리와 동행하며 기뻐하던

그 안에 들어간 당신은 숲의 요정?

하얀 눈 하얀 세상이 온 줄 모르고

순백의 겨울 나무 속에 숨어 버렸으니

 

 

깊은 산 속에 살게 된다면 우리 조금 못나도 된다.

못나도 너무 못나 도시에서는 외면당하고

상처받았었다 할지라도

깊은 산 속에서는 문제 되지 않는다.

오직 나뿐이고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먹을 것조차 없고

심마니 하나 지나치지 않을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다.

 

 

산에 있는 동안에는

혹한의 겨울을 보내는 동안에는

네가 잘났었는지

못난 사람이었는지 가물가물 해지고

비교해볼 만한 누구 하나 없는 탓에

선택의 여지 없는 우리는 동지다.

향적봉 대피소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함께 나누던 담소는 기억 속 잔상으로 남아 오래갈 것이고

다음 이곳으로 또 불러들일 것이다.

 

 

눈 오는 날

서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그 깊은 산속을

우리는 걸었다.

 

 

봄이 오면, 나는 더 밝아진 덕유에게 
잘 지냈느냐고, 겨울을 잘 지나왔다고 말하며
활짝 웃어줄 것이다.

매서운 바람 잘 견뎌낸 이곳

원추리 가득한 무룡산에도 올라 보고

덕유 평전에서 가장 높이 날고 있는 새 소리를 들어볼 테다.

 

 

 

삶 보다 큰 축복은 없다.

너무 큰 고통에 차라리 죽음이 행복이라 외치는 가슴이라 할지라도

기회는 주고 못남을 끄덕이는지 묻고 싶다.

백련사 내려가는 비탈 길에

죽은 듯 살아 숨쉬는 겨울 산의 나무들을 보며

허상을 희망이라 믿고 구분을 잃고 오늘을 숨쉬며

벅찬 내일을 소원하는 우매함을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도 봄은 올 테지...

 

내일 그리는 삶 속에는

깨달음 잃은 습성만 존재할 뿐,

가슴에는 한 숨만 가득이다.

그것은

비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

절대 알 수가 없다.

깨달아야 한다.

내가 누군지를

어디로 갈 것인지

 

 

 

애니메이션 유바바의 성처럼 견고한 요새?

아님, 사바 세계를 잇는 다리?

괴로움의 소멸은 속세의 깨달음일까....

나.... 어디로 가는지 묻지는 말라.

산 넘어 불어오는 바람도 동서남북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 않는가....

내가 가만히 있어 세상도 고요하니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욕심일랑 내려 놓자

흐르는 물처럼

자연의 순리에 거부하지 말자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살고

속 편하게 살자.

 

기다리면 아니 오는 세월

돌아보니 바삐 가버렸으니

지금 참고 있는 거

포기하면

참지 못한 게 되버리니까..

 


물건은 대체가 가능하지만 사람은 아무리 애를 써도 똑같은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고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2015년 한 해를 돌아보면 그 안에는 사람이 있었다. 가장 만나기 쉬운 것과 가장 얻기 쉬운 것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가장 잃기 쉬운 것도 사람이었다. 잃어버린 것을 다시 되찾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사람답게 대하는 진실한 인관관계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며, 진정 소중한 것을 지킬 줄 아는 마음이다. 주위의 모든 것들과 나로 인해 불행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면 나는 더 신중할 것이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며 진실되게 소통하면서 사랑을 베풀 것이다. 2016년 새해 아침을 알리는 문자가 여저거기서 날아 든다. 아침이면 늘 꿈과 희망을 노래하며 소중한 사람의 문자 한 통과 나를 뒤돌아 보며 생각할 수 있는 말 한마디와 마음의 위안을 주는 글 한 줄에 더 큰 행복을 느끼기도 한다. 그렇기에 시인은 어느날 문득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읊었으며 노래하는 가객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가슴으로 풀어 냈는지 모른다. 그날도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는 행복한 하루, 멋진 시간이었음을 회상하면서 丙申年 새해 첫 날 마음을 옮겨 본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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