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선운산 천마봉에서 바라본
선운사 도솔암과 도솔천
때는 가을이다.
가는 곳마다 활엽수는
을씨년스럽게 앙상한 가지만을 남겨 놓았고
흙길 위에는 마른 가을을 깔아 놓았다.
미완성일 때의 아름다움,
아직 철들지 않은 가을나무에서
청신한 바람이 불어온다.
기왓장을 타고 넘어 뒤란의 그늘처럼
내면의 외로움을 만들어내는 가을
넓은 뜰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침묵의 경험
잠시 도솔암 내원궁 돌계단에 앉아
흐릿해진 귀를 의심하며
여름날 더위에 지쳐 풀 죽은 듯하던 초록의 나뭇잎
그 싱그러운 생명을 붉은 물결로 갈아엎어주는
바람 소리를 나는 들었다.
삶은 각박하고
사람들의 마음은 온순한 듯하면서 매우 거칠다.
산 아래 텅 빈 들녘,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비우고자 하는 산
사람사는 세상과 잠시 이별하고
산에 올라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한가로운 일처럼 보일 테지만
스스로에게 휴식이 필요하기도 하다.
가을인데 벌써 겨울을 떠올린다.
멀리서 희미하게 겨울이 밀려오는 듯하다.
바쁜 일상을 통해 바라본 하늘
그것은 여유로운 마음.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잃어버린 정신을 회복하는 일이고
잠깐 동안이지만 잠시 나를 찾는 일이다.
아침형 인간
그곳은 물의 나라, 물의 세상
새벽을 열어가는 사람들
어둡지 않은 마음
밝은 사람들
수인지교
가을산행을 하잖다
싫지 않다.
그들이니까.
천마봉에서 바라본 도솔암과 도솔계곡
가을은 산을 덮고 여름을 밀어낸다.
많은 생각들이 밀려오는 시간
하나씩 하나씩 내가 안고 있는 일련의 고민들이 지나가길
모가지 늘어빼며 학수고대하련다.
흐트러지지 않는 성정
치닫다 흩어지는 몸짓
지팡이 짚고 허리 치켜드는 바람에
자연스레 올라가는 바람의 손들
거룩한 손들
멈춤의 시간들
붙잡아 둔 시선
행복의 번지수는
마음 속 품안에 있다.
초록의 갈등
밀려날 것이냐 사라질 것이냐
그래,
태워버리자.
나를 그곳에 빠뜨려 보자.
바램, 기원
산사에서는 귀로 듣는 것이 제격이다.
바람소리, 풍경소리, 염불 외우는 소리
때로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가을을 느끼기도 한다.
화려한 단풍이 떨어져 파도처럼 밀려와 쌓여만 갈 때
땅 위의 그림자들 길게 늘어져 간다.
가을이면 한층 멋을 더하는 산사의 가을...
고창 선운사의 가을이다.
올려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가을이 자리하고 있다.
가을 그늘, 가을 숲, 가을나무...
모든 것들은 바람에 흔들거리며
가을 아래서 서성이다 마음도 빼앗긴다.
산사의 가을
바람에 일렁이는 단풍숲의 소리가 좋다.
파도처럼 흔들어 대는 단풍잎
초록의 빛과 붉은 빛의 조화로움
미완의 아름다움들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법당의 불상 모습과
산 위 어디선가 맑은 바람이 불어올 때면
내 마음 행복으로 칫닫는다.
나무다리의 만남
사람과의 인연
가을은 사람과의 인연을 연결하는 도구이며
놓치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행렬
낙엽은 가루가 되고 먼지를 일으킨다.
가을이 시끄럽다.
가을을 만나기 위해
하나 둘 사람들이 모인다.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며
사람들은 어떤 가을을 만나는 것일까
늙어가는 가을 햇살
말라가는 낙엽들
고독의 시간...
물 위에 비친 잔상
늦가을 꽃처럼 얕은 물이지만
색깔만큼은 깊게 느껴지고 아득하다.
서서히 밀려 오더니
벌써 이만큼 와버렸다.
흐르는 물처럼 다시 오지 않을 시간
지나는 모든 순간들이 그립다.
다시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지만
떨어져 뒹구는 낙엽을 보며
애틋한 사랑을 노래하고
저만큼 지나간 이 계절을 불러본다.
낙엽
눈물
가을
가슴이 시리다.
주머니 안에 담아온 낙엽,
떠나가는 모든 것들
그래서 아득하다
이 가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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