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으로 물든

늦가을의 풍경이 멋스럽다.

풍요로운 들녘과 절정을 이루던 단풍,

파란 하늘에 솟구친 은행나무의 짙은 노랑 물결,

중봉에서 서석으로 가는 가을 억새길도

가을비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가을은 상쾌한 향기로 가득하고

파스텔 색이 물결을 이루면서

따스함이 깃든 그리움의 날들이다.

그래서 가을은

이별을 고하는 떠남의 시간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하나 없이 청명한 날씨

하늘이 닫혔다 열리기를 반복하는 동안

잿빛으로 하늘이 무거워지기도 하고

대지에 그을을 만들기도 한다.

가끔 올려다보는 파란 하늘에서

겨울이 왔음을 이제 알겠다.

 

얼마 만에 마음 달래는 것인지.

이일 저일을 핑계로 잠시 산을 오르지 못했지만

내가 가고자 했던 곳을 걸어간다는 것은

분명 꽃길 걷는 기분일 테지.

더구나 눈으로 뒤덮인 순백의 설원을 걷는 순간은

잠시나마 근심 덜어낼 수 있어 참 좋더라.

 

동화사 터에서 서석으로 향하던 너른 평원

그 길 위에 놓여진 모든 것은 한가롭다.

걷다 쉬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바람을 들이키며 내면의 귀를 활짝 열고

파란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나는 좋더라. 

 

 

꽃향기 가득하고 녹음으로 뒤덮였던 산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하던 나무의 연둣빛 새싹들과

산을 가득 메운 진달래와 철쭉을 보며

봄을 예찬하던 때가 엊그제였는데

11월 첫눈치고는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 

 

 

 

계절을 따라 온 발길

아직은 이른 새벽

산 아래 쌓여있는 눈을 발견하는 순간

오늘 정상부근의 산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총총총....뒤따르는 운무....

몸에 쌓인 피로가 풀리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시원타.

그날 따라 사무실에서 걸려오는 수 통의 전화는

발걸음을 한참이나 붙잡는다.

마음이 혼란스럽다.

 

 

꿈틀거리는 마음...

끌림의 순간들...

마음이 원하는 것 모두 하고 싶었다.

아니 내가 갈구하는 것이었으니

들길 야생화의 고상함에 이끌리고

낮은 담벼락에 가득 피어있는 붉은 장미에

손가락을 찔리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믿고 싶다.

이렇게 산에 올라 아침을 맞이하는 순간

심장의 꿈틀거림과 끌림이 없다면

눈부신 아침을 보지 못할 것이다.

 

 

한겨울에 핀 눈꽃..

잎이 져버린 빈 가지에 생겨난 설화.....

텅 빈 충만감과 아무것도 지닌 것 없는

빈 가지이기에

아픔을 딛고 겨울잠 자는 나무에서

아름답게 눈꽃이 피어난 것이다.

아침 햇살의 신선함과 높고 푸른 하늘,

고개를 들어 바라보는 하늘은 그야말로 바다 같다.

 

 

세상은 하얗다.

 

 

살다보면 이런일 저런일을 겪게 되고

도시 속에 살아가는 인간의 삶도

결국, 먼지 보다 못한 작은 존재로 인식된다.

 

 

 

 

겨울 산은 깊은 침묵이다.

시끄럽고 소란스럽던 날들을 잠재우고

구름이 산허리에 걸터앉듯 침묵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계절...

 

 

 하늘을 바라본 때가 언제였던지...

이렇게 위에서 우리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바라보아 주는 넓은 품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가끔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살자.

 

 

 

 그래.... 가끔 하늘을 보며 살자.........

그 푸르고 넓은 품이 내 마음

더 넓게 만들어 주고 편안한 쉼터가 되어 주니까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지라도

그게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잖아...

 

 

고개를 들고 하늘과 마주하기까지

미쳐 깨닫지 못한 것들에 대한 독선적인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려 들지만

 

 

 

하늘의 푸름과 상쾌함

그리고 마음의 기쁨들...

자연이 선물한 햇살과 하늘과 바람을 느끼며

오늘 하루 웃어보는 거다.

가끔은 쉬어 가라고

가끔은 잘 이겨내라고 말이다.

 

 

걸어 왔던 길과 가야 할 길

지금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

 

 

그러나

나는 잘 모르겠다.

누구에게 물어본다는 것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는 것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를 뿐이고

길 위에서 놓여진 나의 삶

나는 걸을 뿐이다. 

 

 

 

무등산 서석대 주상절리의 하얀 눈꽃을 바라 보다.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처럼 차가운 바람이 불지만

 오후가 다가오면서 기분은 변한다.

나른한 오후의 한나절이다.

 

 

 

장불재 송신소를 시작으로 안양산 백마능선에 들어선다.

낙타봉에서 바라본 규봉암

창백한 하늘과

구름에 덮힌 산

이 순간 모든 것은 겨울이다.

 

 

 

갑작스레 찾아온 겨울이 익숙치가 않다.

지난 가을은

내게 다가와서 이렇게 말을 건냈다.

 

 

 가을이 오면 가을빛으로 물든
가을 사랑을 하고 싶어.
너른 들판에 곡식과 열매가 익어갈 때
여태 표현하지 못했던 내 마음을
맘껏 표현하고 싶어.
날마다 계절이 조금씩 깊어지는 게 느껴져.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과 은행잎들 속에
우리의 이야기도 조금씩 담고 싶어.
햇살 좋고

코 끝에 스치는 바람이 좋은 날에 말이야.

 

 

그래서 바람은 떠나가는 가을에게 답장을 한다. 

 

 

연한 가을볕이 목덜미를 스칠 때
그리움에 목젖이 왈칵 뜨거워짐을 느껴 보고 싶어.
그래서 멀리서 그리운 사람이
행여 올지 모른다는 생각으로
우체국 앞을 서성이게 돼....


푸르름이 쓸쓸함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이기에
옷깃을 여미는 외로움은 더 하는 것 같아...
그립다는 것은

채워도 늘 부족한 눈길이 아닌가 싶기도 해.
그것은 마치 그리운 이가 떠나간

휑한 빈 골목을 바라보는 때처럼...


다시 올지 모른다는 기다림과 설렘의 시간
그것은 가을이 간직한 사랑???
그것은 붉게 물들어가는 그리움들

11월의 마지막 늦가을 첫눈 내리던 날

이것을 겨울이라 해야 할까... 

 

 

 

어려움이 있어도 참아야지

나를 옭아매는 마음의 족쇄를 벗어 던져버리고 싶다.

나를 꼭 안아 주는 산에서 말이다.

당신께서 주신 끊임없는 믿음 속에서

밝고 환하고 긍정적으로 살아야지.

아직은 희망을 가지고 말이야

.

.

.

 

 

담양 소쇄원에 잠시 들렸다.

조금 차분해진 마음으로

가던 길 오던 길 되돌아 보는 시간

한겨울 소쇄원 주변 풍경이

온통 흰 눈에 소복하게 덮힐 때면

대나무의 푸른 빛은 더 할 것이고

내 마음도 따스한 위안을 안겨 줄 것이다.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

정원을 가로지르는 물소리...

 

 

오래된 담장 위에 올려진 기왓장

이끼에서 첫눈이 녹아 떨어질 때

가지 끝에 아직 남아 있는 홍시는

여태 새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소쇄원 제월당

저 흙마루에 걸쳐 앉아

시원한 탁주 한 잔

따뜻한 차 한 잔 마시고 싶다.

 

나는 갑자기 착해지려고 한다.

이다음 세상 어느 길목에선가 우연히 서로 마주칠 때

나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손 내밀며 사랑해 주고 싶다.

 

가을의 때를 아직 다 벗겨내지 못한 초겨울 무등,

그곳 무등에는 우리네 마음과 발길 빠지도록 많은 눈이 내렸다.

백마능선을 걸어 안양산에 당도했을 때

고집스럽고 정정한 소나무

가벼운 눈송이의 무게를 못 이겨 꺽이고 말았다.

여기저기 상처가 많은 산

바로 겨울 산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 부드러움이 강함을 무너트렸던 안양산의 숲길...

휴양림으로 내려오면서

산다는 게 뭘까 하고 문득 혼자서 중얼거릴 때

꺾어진 나뭇가지를 보며

 우리 또한 연약한 존재임을 알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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