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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 없는 산이 사람을 불러 모은다. 월출탐방 계획과 시행착오, 그리고 사람과 사람, 그물코의 미세함에 걸려든 만남의 인연 때문인지 쉽게 풀지 못하는 어려운 숙제들.. 그리고 그 안의 또 다른 산.... 아직 월출 미답 구간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이제 스스로가 산을 찾아갈 수 있을 정도로 월출탐방팀의 신체적 기량과 생각, 산을 이해하는 그 폭도 많이 커졌다. 시간여행의 일부분에서 자연과 함께하며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깨달음을 얻는 일. 어쩌면 내일 당장이라도 함께 할 수 없는 산행이 될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진정 산을 좋아했고 산을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왜 산을 찾는지를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고 <이것이 산이다.> 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끔 산을 오르는 맛. 길이 아니어도 좋은.... 그 맛을 아는 사람들과 느낌을 담아본다.

 

 

예정된 시간, 예정된 장소로 향하는 발걸음. 발끝 조차 보이지 않은 짙은 어둠이라 새날은 언제 오나 싶다. 고요한 숲, 어둠을 찢어 빛을 뽑아내는 새소리, 들숨에 목구멍이 얼어버릴 것 같은 청량한 공기는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만져 보았던 양자봉의 새벽 풍경들이다. 양자봉에 올라 동으로 치솟는 태양을 보기 위해 새벽이 분주하다. 너무 서두르다 보니 카메라 베터리를 충천기에 꽂아 둔 채 바디만 챙겨 집을 나서 버렸다. 지난주에 다녀왔던 양자봉이지만, 회사의 바쁜 업무로 아이폰에 담아겨진 사진을 일주일이 지난 오늘에서야 꺼내 기록을 정리한다. 그날 은천폭포로 향하는 발길에는 사람의 흔적은 없다. 산성대 좌능을 내려설 때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산에 머물던 그 시간 조차 달갑게 받아들이는 그들의 모습과 얼굴에는 지친 기색 하나 없고 고단함도 없다. 목적지 은천골 은천폭포에 이르고 용광로에 달궈진 쇳덩이를 식히듯 몸을 밀어 넣을 때의 그 시원함.... 그날 그 느낌들, 이젠 지나간 날의 일부분이며 순간의 삶이다.

 

 

간밤에 산은 잠을 잘 잔 듯하다. 숙면을 취한 용이 늦잠에 화들짝 놀라 서둘러 떠날 채비를 하듯 구름은 회오리 치며 봉우리 하나를 감아 하늘로 끌어 올려버릴 기세다. 운무의 춤사위로 양자봉 일출은 실패로 돌아 갔지만, 그동안 있었던 생각들.... 마음 달래기를 수 차례 그리고 모질게 다시 마음먹고 눈뜨는 날,

 

 

온갖 잡념과 마음의 유혹들을 단칼에 베어버리던 날,

 

 

굳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그 자체가 풍경이 되고 새로운 시가 되는 날,

내가 뱉은 말과 행동 하나가 글이 되고 삶으로 이어져 꽃망을 터트리던 날,

 

 

그리고 온전한 나를 찾고 마음이 죽고 마음이 다시 사는 날,

양자봉을 거닐 던 그날의 하루는 신비롭고 새로운 날이었다. .

 

 

요즘 살아가는 하루하루도 마찬가지 새로운 날들이다.

꿈을 꾸는 것도 새롭고 앞으로의 꿈도 새롭다.

 

 

어제와 달리 오늘 생각하는 것도 새롭다.

그 길에서 처럼 어딘가를 걷는다는 것은 새롭고 신비로운 일이다.

 

 

잠시 미끄러져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잡을 수 있는 손과 땅을 딛고 있는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산다는 게 다 그런다지만,

 

 

어영부영 지내다 보니 나이만 먹었나 보다.

이리 저리 무엇엔가 휩쓸리듯 지내와서 마음은 엉망진창이다.

 

 

 

 

가족이 건재하고 행복하다면 그 삶은 복이다.

셋바람이 비를 몰고와 뺨을 후려치더니

오후에 불어대는 이름 모를 바람은 님의 옷깃 여미듯 마음을 달래주는구나.

 

초여름 하늬바람에 묻어오는 포근한 숨소리처럼

나무그늘 아래 살랑이는 바람의 춤사위가 아름답지 않던가.

 

 

실록의 푸름이 지나니 오색의 아름다운 춤사위가 말을 건네는 듯하고

뼈마디 삭신은 찬바람에 가슴시려 앙상한 마음 끝이 없다.

 

 

아무리 외롭다 한들 그 끝은 알 길 없고,

그래도 쓸쓸해 하지는 말자.

 

 

 

한 두 서너 달 참고 견디면

따스하고 포근한 봄님이 살며시 다시 다가설테고

살아 숨쉬는 생명들 하나 둘 봄바람 치맛자락에 향기를 품어 춤을 추리라.

그래서 우리 다시 만나자.

 

 

이런 모순된 모습이 진정 내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인가 싶다.

 

 

 

모진 시련의 풍파...,

 

 

아름다운 마음,

포근한 믿음과 사랑으로 곱게 키운 세상의 여운에 내마음 아픔만 더해갈 뿐.

 

 

 

바람이 불면 부는대로

 

 

 

구름이 지나면 지나는 대로

 

 

태양이 비춰지고 어둠이 드리워져

휘엉청 밝은 달이 뜨더라도

 

 

 

앞으로 남은 날

이리 저리 휩쓸리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기다림의 시간은 지루하지 않다.

반드시 지켜야 할 약속이 남아 있기 때문이리라.

 

 

 

 

 

 

 

물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눈이 오면

그 눈을 온몸으로 맞고 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고

숙명이잖아
가끔은 산에 올라

찌든 삶의 찌꺼기

내려놓고 와야만 한다.

때로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고
눈물 흘릴 줄도 알며
어제처럼 게으름을 깨우고
동트는 잿빛 아침 흐릿한 여명
가슴에 담아 보자.


어둠의 긴 터널

이제 벗어 나야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견디는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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