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에서..
인연이 닿지 않아 마음속 그리움이 두텁게 쌓여가는 지리를 대신하여 요즘 월출산을 자주 오르게 된다. 월출산은 국립공원 중 가장 작은 면적을 가지고 있지만 수려한 경치만큼은 최고로 손꼽을 수 있겠다. 볼수록 그 내면의 세계로 빠져들게 하는 산이기 때문이다. 만나자고 말하기까지 많은 날이 지났다. 월출 북릉에 오르기까지 많이 망설였고 혼자 리어설을 얼마나 해댔는지 모른다. 나는 그 안에 들어가는 순간 움켜진 손을 펼치며 탄성을 질렀다. 구석구석 시선을 향하고 내가 스며들 수 있도록 말이다. 명산 월출 내면의 특별함을 담아 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로 할 것 같다. 여지껏 보지 못하고 가지 못했던 곳을 알아가기 위해 시간과 발품을 부지런히 팔아야 할 것이다. 신선이 머물렀을지 모를 장엄한 선경속 그 생생한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나를 되돌아 본다. 물론 산을 오르는데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많은 것 바라지 않고 보는 즐거움과 재밌는 이야기거리가 있으면 그만 아니겠는가. 그 안에 소소한 행복이 있으면 더 없이 좋겠지. 그래서 산은 혼자서는 조화로울 수 없나 보다. 월출을 오르는 동안 아직 하나의 산을 온전하게 다 알지 못하는데 굳이 먼 길 찾아 떠날 필요가 있겠는가 싶기도 하고 같은 산이면서 그 안에 숨겨진 비경을 찾아 떠나는 것은 설레임, 시작부터 끝까지 두려움과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산이기에 월출 예찬을 늘어 놓는다.
월출탐방은 하나 보다는 친숙하고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우리 스스로가 월출탐방단원이라고 말한다. 매일 만나는 것도 모라자 주말,휴일까지 그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특별함이고 즐거움이다. 그들은 다음 월출을 오르기 위해 매일 주간 주말날씨를 들여다 보며 하늘이 열리기를 간절히 바라고 기다린다. 월출 북릉에 올랐던 그날의 하늘은 맑았으나 옅은 박무로 멀리 영산강까지는 무리인가 싶다. 그러나 능선길에 간간히 불어대던 한줌의 바람은 시원하였다. 깊은 골짜기에서 발산하는 산내음을 들이킬 때 행복의 기준치는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므로써 깊은 사랑에 빠져 당분간 헤어나질 못한 사랑을 하듯 은밀하고 조심스레 월출 내부로 숨어들어가 훗날 가슴 저편에서 그윽한 향기가 남겨지도록 나는 월출을 좋아 하련다.
유홍준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1~7 국내편 중 남도답사일번지 강진을 시작으로 빠알간 동백꽃 흐드러지게 핀 만덕산 다산초당의 천일각 목재난간에 걸터 앉아 강진만 구강포구를 바라보았던 어느때가 더 없이 좋았던 기억과 90년 초 <남부군>과 <태백산맥>을 읽고 처음 대면 하였던 그때의 지리산을 잊을 수 없다. 조정래가 소설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지리를 수 없이 올랐듯이 나도 배낭을 매고 소설 속 그 능선 길을 걸으며 슬픔과 애환이 깃든 골짜기를 내려다 보고 싶었다. 그러나 떠났던 날은 긴 장마의 시작이었으니... 부족한 정보와 의욕만이 몸을 앞세웠다. 무지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었던 그때가 쉽게 잊혀지지 않아 가끔 혼자 가벼운 웃음거리가 되곤 한다. 언제가 될 지 기약은 없지만, 백두대간의 꿈도 잊지 않을거다.
지금 나는 월출에 들어섰고 우직한 그에게 홀딱 반했다. 사랑에 빠지면 그윽한 시선으로 바라보듯이 월출산을 10시간이 넘게 걸으면서 가슴 저편에서 그윽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인일일까? 아니 당연할 것이다. 이 또한 월출산을 사랑하는 증거가 아닐까?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나니 하늘아래 같은 월출이어도 각기 다른 세상을 찾아 또 떠나 보련다.
아침 7시 기찬랜드 주차장을 출발, 거북이 등처럼 말라버린 용추폭포를 지나 은천골로 들어선다. 며칠 전 비가 와서 그런지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크고 좋다. 치유의 산, 생명의 산 깊숙한 곳에서 생성되어 큰 바위틈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줄기는 곳곳에 야트막한 소(沼)를 만들고 음이온을 발산하여 은천골에 숲내음, 산내음을 뿜어 오염된 코를 자극한다. 그리고 은밀하게 스며들 듯 북릉에 올라타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천황봉을 향해 사브작 다가간다.
소(沼)에 담겨진 폭포수는 쉽게 마를 것 같지 않다. 하지만 기찬랜드까지 내려가면서 깨끗함은 마르고 인간은 욕심을 채운다. 이익에 눈먼 사람들의 배를 채워낸다... 하늘을 보면 분명 새는 날아가는데 허공에 흔적은 없고, 바람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옷깃만 스칠뿐이다. 자연은 그렇게 비워내고 다시 채워지기를 반복하며 고였던 물을 아래로 흘러보내지만 인간은 그것을 쉽게 깨닫지 못한다.
잠시 머물던 은천폭포를 뒤로 하고 이제 북릉 능선을 향해 암릉 릿지 구간을 힘차게 오른다.
분명 맑은 날씨인데 공기중 수중기가 많아서인지 하늘은 뿌옇고 흐릿하다. 멀리 천황봉을 사이에 두고 조망이 압권이다.
발 아래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경쾌하다.
희미하게 남겨진 선답자의 인족을 더듬어 잡목과 낮은 키의 침엽수 숲을 지그재그 헤치는 동안 등 뒤로는 우리쪽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는 산성대가 반갑게 시야에 들온다.
악어의 눈처럼 생긴 사리봉 아래 영암 상수지
기찬랜드를 출발하여 골과 암릉을 걸어 천황봉에 도착하기까지 5시간을 넘겨 버렸다.
무거운 배낭을 매고 멀리 한양에서 내려온 젊은 청춘들은 마음이 청춘인 사람들과 함께 하기 싫단다. 손을 뿌리치는 이유는 다 있느니.
그것을 지켜 보며 입으로 말하지 못해 안달했을 내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웃음은 해맑다.
봄이 왔다고 소문은 났지만 녹음을 입지 않아 볼 것이 없다.
겨울은 겨울대로 하얀 눈꽃을 입어야 제맛이고
봄은 연초록 새순에 생명이 있어 좋고
여름은 땡볕을 피해 그늘을 찾는 맛이고
가을은 찌릿찌릿 가슴 울리는 애달픔이다.
구정봉 어느 너른 바위에서 판콜A 여인들과 함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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