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아래 어느 마을에는 벌써부터 매화꽃이 피기 시작하여 때이른 봄소식을 전해오더니 아무도 없는 빈 능선 월출산 육형제봉 넘어는 한겨울의 바람소리만 요란하다. 바람폭포 바람골 응달진 돌계단과 바위틈 사이로 아직 녹지 않은 겨울을 쥐어짜는데 그 모습이 눈물겹도록 가슴 시리다. 꼭꼭 숨겨둔 산, 가지런히 서 있는 육봉의 자태와 깊이 숨겨둔 비경을 향해 떠나가고픈 마음이 요동하였지만, 그동안 발가락 부상으로 힘 없이 주저 앉아야만 했던 시간들... 달궈진 몸을 추스리고 낡고 빛바랜 낙엽의 노래처럼 세찬 바람 불어오던 날 높고 또는 낮게 새들의 노래소리 들으며 산을 오르니 신명난다. 그리움이 머무는 곳. 사랑을 하여 가슴 앓이를 하듯 소리 없이 다가가 보고 싶은 비경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라 말은 하지 않으련다. 잠시 머물다 떠나간 사랑이라 할지라도 문득문득 그리움이 밀려와 잊혀져간 기억이 떠오르면 높은 곳에 올라 먼 산을 바라 보리라. 그리고 세상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 나를 찾아 떠나 보련다.
기상청에서 휴일 정오부터 일방적인 비소식을 통보 하더니 하늘은 이내 검은 구름으로 뒤덮어 버리고만다. 잔뜩 흐린 날씨에 급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같아 산행을 진행 해야 할지 고민이 앞서지만 서두를 수 밖에... 산행 채비를 마친 후 천황사 야영장으로 이동하여 구름다리를 향해 오르는 동안에도 마음은 조급하다. 당초 산행 예정지는 탑동마을에서 시작하여 장군봉과 산성대로 계획 하였으나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아 산성대는 포기하고 구름다리를 지나 천황봉을 돌아 육형제봉과 장군봉으로 정한다.
친구 둘, 그리고 나
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지면 비단실 풀어 주듯 가끔은 안식처가 되어 주기도 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한 그런 친구가 나는 좋더라. 다들 술은 잘 못하지만 가끔 서로 마주보고 이야기 하며 저녁식사 한끼에 술 한잔 들이켜도 고향 냄새가 뭍어나는 그런 친구들이 곁에 있어 마음 편하다. 언제 내 곁을 떠나갈지 알 수는 없지만 쉬운 말 하지 않고 받아주는 배려심이 있는 그런 친구 둘과 산을 오른다. 20대에 산에 오른 이후 다시 20년의 공백을 채우기에는 체력적인 부담이 있지만 그들의 발에 맞춰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사자봉을 오르는 급경사의 가파른 철계단은 동절기 동안 안전을 위해 국공에서 구간별로 폐쇠하였기에 더 이상 오를 수가 없다.
구름다리 아래 바람골 삼거리로 내려서며 당초 목적지인 바람폭포를 지나 광암터 방향으로 향한다.
이른 아침에 출발한지라 시간적 여유가 많다.
천황봉을 오르기 위해 구름다리를 건너 보지만
사자봉을 오르는 길이 막혀 두 사람을 혼란스럽게 한다.
흔들리는 마음을 달래보려 광암터를 지나 천황봉을 향해 다시 올라서지만
몰려드는 바람과 먹구름에 정상쪽은 운무에 가려 다음을 기약해야 했으며
조급한 마음을 안고 시선은 산성대에 두고 몸은 육봉을 향해 방향을 다시 뒤집는다.
천길 낭떠러지 넘어 매봉과 사자봉을 향해 매몰차게 바람이 불어대는 중에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이곳으로 오기까지 마음 다스리고 떨리는 다리에게
야단과 협박을 가하며 그들은 네발로 기어왔다.
때로는 고소 공포증이 발길을 붙잡지만 그들은 네발로 기어다니기를...
타고난 팔자였던가
넘실넘실 꽃잎이 바람에 날리듯 자연은 우리들 곁으로 사붓이 내려앉아
귓볼에 사랑을 속삭이듯 온몸으로 품어 달라고 한다.
바람과 벗을 삼았더니 겨울의 하얀 꽃으로 피어나고
차가운 기운에 영원히 시들지 않을 꽃처럼 하얀 겨울은 꺼지지 않을 심지와 같이 뜨겁다.
걷는게 아닌 네발로 기다 보니 허리가 다 아프고 어느 길 하나 쉬운 게 없다.
지나온 길을 향해 고개를 돌렸을 때 정상의 마루금은 이미 구름에 감춰진지 오래다. 현재의 위치 보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볼 때 아직은 내가 낮은 곳에 있음을 알겠고 어딘가의 목적지를 향해 부산히 움직이고 있는 살아 있는 나를 인식한다. 차가운 바람이 살갗으로 스며들 듯 정신없이 뒤흔드는 바람을 피부로 나는 보았노라. 산을 휘감고 불어오는 무언의 바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덧없는 존재였음을 기억하고 되새긴다. 월출의 빼어난 풍경에 마음 사로잡혀 발길은 쉽게 떨어지질 않지만 다시 내려서야 한다. 이곳을 떠나 일상의 삶으로 돌아가야한다.
몸과 옷은 너덜거리고 만신창이가 되었지만
고소 공포증도 잘 이겨내고 안전하게 내려와서 이만하면 다행이다 싶다.
다음 또 이 자리에 앉아 병풍처럼 둘러쳐진 월출을 배경삼아 사진으로 남겨지길 바란다.
내가 나의 감옥이다 / 유안진
한눈 팔고 사는 줄은 진즉 알았지만
두 눈 다 팔고 살아온 줄은 까맣게 몰랐다.
언제 어디에서 한눈을 팔았는지
무엇에다 두 눈 다 팔아먹었는지
나는 못 보고 타인들만 보였지
내 안은 안 보이고 내 바깥만 보였지
눈 없는 나를 바라보는 남의 눈들 피하느라
나를 내 속으로 가두곤 했지
가시 껍데기로 가두고도
떫은 속껍질에 또 갇힌 밤송이
마음이 바라면 피곤체질이 거절하고
몸이 갈망하면 바늘 편견이 시큰둥해져
겹겹으로 가두어져 여기까지 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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