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머리가 복잡하다. 인간의 마음이 산처럼 변하지 않고 늘 한결 같으면 좋으련만 과잉 욕망으로 결국 외로운 존재가 되버리곤 한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살아도 세상을 살면서 가져야 할 가치와 버려할 것에 대한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면 황량하고 외로운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내 마음에 있는 모든 것, 욕구불만, 콤플렉스, 인간관계에서 오는 삶의 찌꺼기들을 바닥째로 끄집어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산.... 겉으로는 잘 표현할 줄 모르지만 나는 그런 산이 그저 한없이 좋더라. 나를 가장 잘 이해하고 설득시키며 함께 해주기에 늘 곁에 두고 싶다. 그렇기에 내가 산을 자주 찾는 이유이기도 하며 변함 없이 우직한 모습과 푸른 젊음으로 우리에게로 손짓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좋더라.

 

산을 바라 보아도 진정성이 없으면 그건 산이 아니다. 마음을 열어 사실을 받아 들이고 자연과 호흡하다 보면 맑고 푸른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몸이 농익어 흘러내리는 땀의 소중함을 알겠고 시원하게 불어오는 한줄기의 바람에 세상 시름과 싸웠던 모든걸 잊어버리고 내려놓는다. 나와 누군가 함께 동행 하지 않아도 스스로가 한 그루의 나무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깨달음이 아닐련지. 평등한 성품에는 너와 내가 없고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에는 멀고 가까움이 없다. 지나왔던 월출의 산마루를 바라보고 산길 걷고 있노라면 향기로운 꽃이 피는 듯 마음에 흥이 돋는다.  때묻지 않은 사람, 때묻지 않은 자연,  산성치 주능을 달리는 동안 사람과 자연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루어 끝없는 생명의 빛을 발산한다.

 

 

 

오전 9시... 하루라도 수영을 하지 않으면 온몸에 종기가 난다는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기체육공원을 출발하여 솔잎이 얇게 덮혀진 부드러운 흙길을 가볍게 올라채 첫 번째 조망 바위에 도착한다. 그곳에 올라서니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이고 행복은 가득하다. 그리고는 시선을 더 높고 더 멀리 목적지를 향해 내던진다. 홀로 평일의 휴일 특별함을 찾던 중 어느 때 가보리라 마음먹었던 곳이 있어 눈여겨보았던 선성대능선을 오늘에서야 찾았다. 월출의 또 다른 모습을 마음에 담아내는 동안 능선구간에서 느끼게 되는 극도의 피로감은 순간 짜릿함으로 바뀌었으며 산성대 능선은 한 고개 넘을 때마다 다음 풍경이 궁금하여 한곳에서 오랫동안 쉬어 갈 수가 없다. 능선은 강물이 되어 한곳에 갇히고 머물러 있지 않고 강물이 유유히 흐르듯 천황봉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천황봉을 향해 오르는 동안 등 뒤로 밀어주듯 불어주는 산뜻한 바람이 고마웠고 산 아래 펼쳐진 영암 들녘은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풍요로워 보인다. 아득하게 평원이 펼쳐질 것 같지만 굽이쳐 흐르는 강이 있고 생명이 있다. 지금쯤이면 겨울철 입맛을 돋구던 봄동은 땅 위에서 화려한 꽃을 피울 준비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봄은 고향마을 양지바른 어딘가에서 계절의 문고리를 잡고 반가운 미소를 가득 담아 분명 생명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서성이고 있을 테고 기다림 속 그리움의 물결은 시원하게 불어주는 바람에 물결처럼 출렁일 것이다.

 

천황봉 아래 통천문 철계단 바위 틈새에는 두터운 얼음과 서늘한 냉기를 뿜어내는 바람이 아직도 한겨울이다. 점심 무렵 광암터로 내려와 형제봉 뒤편에서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매봉과 사자봉을 병풍 삼아 장군봉을 향해 오르고 내리니 어느새 마지막 탑동골로 들어선다.

 

 

 

  

  

 

서측 노적봉 능선 도갑사에서 미왕재로 오르다 보면 좌측 산허리에 상견성암이 있는데 바위 앞에는 월출산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천봉용수 만령쟁호(千峰龍秀 萬嶺爭虎) 암각이 새겨져 있다고 한다. 사실 나는 확인하지 못했다. 지난해 늦가을 노적봉 능선을 홀로 오를 때 월출산의 형새를 표현하던 글을 기억하고는 산성대에 올라서야 그것이었음을 다시금 깨달았다. "천봉용수 만령쟁호(千峰龍秀 萬嶺爭虎), 천개의 봉우리는 빼어남을 자랑하는 용과 같고 만개의 계곡은 호랑이들이 서로 다투는 듯 하다" 산성대에 올라서니 감흥은 봄의 여린 새순 잎파리 마냥 돋고 그리움은 물처럼 흐르라...

 

 

 

 

 

 

 

 

 

 

 

 

 

 

 

 

 

 

 

 

 

 

 

 

 

 

   

 

 

  

 

 

 

 

 

 

 

 

 

 

 

 

 

 

 

 

 

 

 

 

 

 

 

 

무심천 / 도종환

한세상 사는 동안
가장 버리기 힘든 것 중 하나가
욕심이라서
인연이라서
그 끈 떨쳐버릴 수 없어 괴로울 때
이 물의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시게

흐르고 흘러 물의 끝에서
문득 노을이 앞을 막아서는 저물 무렵
그토록 괴로워하던 것의 실체를 꺼내
물 한 자락에 씻어 헹구어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사는 동안엔 끝내 이루어지지 않을
어긋나고 어긋나는 사랑의 매듭
다 풀어 물살에 주고
달맞이 꽃 속에 서서 흔들리다 돌아보시게

돌아서는 텅 빈 가슴으로
바람 한줄기 서늘히 다가와 몸을 감거든
어찌하여 이 물이 그토록 오랜 세월
무심히 흘러오고 흘러갔는지 알게 될지니
아무것에도 걸림이 없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욕심을 다 버린 뒤
저녁 하늘처럼 넓어진 마음 무심이라 하나니
다 비워 고요히 깊어지는 마음을
무심이라 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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