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빛이 심연과도 같이 짙고 푸르른 어느 날, 어딘가의 낯선 곳에서 낯선 모습으로 낯선 세상을 바라다 보면 어떤 특별함을 만나게 될 것이고 인생에 대한 자기만의 진리를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짙은 안개와 해무에 둘러 쌓인 섬들, 그날은 분명 투구봉 정상에 올랐으나 바다를 바라 보아야 했으며 몽환적 바다로 향하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어디선가 들려오는 멜로디를 들으며 세상사 나의 뜻대로 잘 돌아가지 않아 사람들과의 이런 저런 충돌로 시름을 앓던 가슴을 아주 먼 곳에 떨쳐 버리는 것이었다. 짧은 그 하루는 더 없이 좋은 날이었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삶이었다. 지나왔던 길과 스쳐간 인연이라 할지라도 무심코 지나쳤던 익숙한 곳의 익숙한 풍경속에서 유독 낯설게 느껴지는 것들.., 홀로선 땅 그 내면의 짙은 색깔과 함께 무거운 마음 벗어내고 싫든 좋든 새벽녘 남도의 먼 바다와 발아래 남창과 오산에 뒤덮은 안개바다 그 안에 내가 있는 것만으로 큰 만족감을 얻기에 충분하도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고 나 또한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지 못하는 낯선 곳으로 떠났던 둘만의 투구봉 여행은 이렇게 시작된다.
늘 보았던 낡은 풍경들... 새로움을 찾아 떠나고 싶었다. 마음을 다잡고 떠났던 곳은 해남 두륜산 두륜봉의 맥이 남으로 이어진 투구봉이다. 마음에서 환호처럼 질러지는 특별한 풍경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 4시 차 키를 돌려 핸들을 잡아야 했으며 영혼에 각인되는 풍경으로 남으리라 믿고 싶었다. 어느 날의 하루에 비로소 풍경들은 마음으로 다가올 수 있었던 것도 나의 흔적과 내 모습을 정성스럽게 사진에 담아준 복원이라는 친구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며 그래서인지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그 감흥은 더 클 수 밖에 없다. 호의적이며 긍정적인 생각,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애쓰는 친구의 모습이 외부로 드러난다. 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잘 될 것이고 그 일들은 뜻대로 잘 이어져 갈 것이다.
완도대교를 앞두고 해남 남창 마을 인근 쇠노재 주유소에 도착한다. 성도암 방향의 어두운 임도를 따라 올라가다 우측 위봉 들머리를 알리는 시그널을 발견하고 곧장 치고 오른다. 새벽의 찬공기와 더불어 이슬에 옷이 젖어 체온이 떨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머리속에 가득하다. 게으름 피우다 주인에게 채칙질을 당하는 듯 뒤에서는 황소 한마리가 힘겨운 쟁기질에 거친 숨을 몰아 쉬며 뒤따르더니 금새 그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다. 암벽으로된 급경사의 직등 구간이 계속 이어지는 동안 힘들다며 몇 차례 쉬어가자는 요구에 많은 시간이 지체가 된다. 당초 계획은 투구봉에서 일출을 보는게 목적이었으나 위봉 조망바위에서 아침 일출을 맞이한다.
투구봉 정상에는 염소, 물개, 벼룩, 딱정벌레, 호미, 절구, 해파리, 인절미, 가래떡 등 여러 형상의 바위들이 위태롭게 올려져 있다. 물론 내가 작명한 이름들이지만, 그 크기 또한 상당하다.
다닥다닥 서로 기댄듯한 섬들은 바다의 산처럼 고만 고만하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제 막 새벽 잠에서 깬 듯한 바다의 섬들은 포근한 이불에 걷어내고 나른한 아침 기지개를 편다. 내려다 보이는 앞 마을의 가로등도 눈을 부릅뜨며 밤을 꼬박 지샌 탓인지 결국 눈알은 오래된 동태 눈이 되버린다. 틈틈이 밝아오는 하늘과 바다를 뒤덮은 짙은 해무는 산에서 보는 운해를 대신하였고 여명이 사라지는 찰나의 아름다운 하늘과 섬과, 바다와 아침이 한데 어우러져 바다의 배경이 되는 그림 같은 풍경에 잠시 넋을 내려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너희가 게맛을 알아?"
때로는 누군가의 풍경이 된다는 것. 빛을 머금은 향기일테지.....
땅끝 옆마을 해남 남창마을과 완도를 이어주는 완도대교, 사면의 바다가 상쾌한 오봉의 상황봉, 그리고 오른쪽 뒤로 제주 한라산의 산그림자?? 참고로 남으로 저렇게 높은 섬은 없다.
이른 새벽 달마산은 고요하다. 관음봉을 시작하여 큰 해일이 일듯 불썬봉의 주봉은 도솔봉 송신탑으로 치닫는다. 확트인 시야로 눈이 시원스럽다.
물론 어느 곳인들 손상되지 않은 자연이 주는 경이는 똑같을 것이다. 풍경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읽어내는 것이기에 때로는 그 보다 더한 풍경이 있을 것이지만 마음으로 다가오는 풍경이 주는 경외는 온전히 나만의 소유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끝이 보일 듯 말 듯 검푸른 밤 한가운데 희끄무레하게 떠 있는 남도의 섬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이다. 이 시간 이 공간속에서 아무런 간섭도 없이 한가로움을 만끽한다는 것은 마음의 풍요이며 버릴 수 없는 사치다.
무언가에 얻어 맞는 듯 몸이 휘청거리는 새벽.
그날 높은 곳에 올랐던 사람은 장소가 어디였든지 저 붉은 태양을 지켜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밀려오는 감흥을 마음에 담았을 것이고 자연의 위대함에 하찮고 볼품없이 서 있는 초라한 인간의 모습을 떠올렸을 것이다. 매일 반복되는 하루지만 우리가 보고 있는 오늘의 아침은 분명 어제와 다른 특별함이다.
그 섬에 가리 / 김정화
바람 따라가듯
길 없어도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고
너에게 가리
일곱 빛갈 영롱한 별빛아래
바다와 하늘이 몸을 섞으며
슬픔을 묻는 곳
그 섬에 가리
넘어지고 또 일어서고
돌아온 길 돌아다보며
먼 하늘 한 자락 눈에 묻고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서 있는
남쪽 끝 그 섬으로
나는 가리
위봉의 어느 조망바위에서 투구봉과 해무에 쌓인 강진만, 장흥의 천관산을 바라보다.
왼쪽 두륜봉과 오른쪽 두륜산 주봉 가련봉
바다는 왔던 순서대로 떠났다 다시 밀려왔다. 검고 어두웠던 하늘이 옅어지면서 우리가 나누던 대화도 지워져 갔고 우리가 서 있던 그곳의 풍경도 점점 뒤로 물러 났다.
그래도 남은 것은 누군가가 만들어 냈다고 하기에는 믿겨지지 않은 자연이었다. 그렇게 마음에서 환호처럼 질러지는 풍경을 만나는 가끔의 하루에 비로소 나는 내가 됨을 알았다. 어디가 되었든지 그 목적지가 무엇이었든지 떠나 보내는 일이라든지 떠나는 일이라든지 간혹 살만하게 하는 삶의 어느 일상임을 이제는 알 것 같다.
투구봉은 발걸음을 옮기는 위치에 따라 보여지고 보여주는 모습이 전혀 달라진다.
주작산과 덕룡산..
꽃피는 춘삼월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 날 주작의 날개를 달고 용 등허리에 올라 타기 위해 너를 만나러 갈테다.
말 잔등처럼 내려앉은 대둔산 띠밭재와 달마산
만일재에서 바라본 가련봉과 노승봉
북미륵암 용화전에서 흘러나오는 불경소리와 한줌의 바람은 처마에 부딪쳐 하늘에 흩어지고 구름은 깨달음을 향해 어디론가 흘러가는구나.
자연 암반 위에 올려진 북미륵암 동삼층석탑(北彌勒庵 東三層石塔), 석탑의 단층 기단부는 일반적인 목재 원형기둥 하단에 자연석 형태에 맞게 나무를 다듬어 기초석 위에 올려 놓은 기법으로 그렝이기법이라고 하는데 이곳 북미륵암 동삼층석탑 또한 같은 기법을 적용하였다.
일지암(日枝庵) 가는 길
조선후기의 대표적 선승 가운데 한 사람이자 다성(茶聖)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머물렀던 일지암(日枝庵)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조선후기 실학의 거두이자 당대의 명사인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 남화(南畵)를 꽃 피웠던 남종화의 산실이기도 하며 소치 허련을 배출했던 곳이기도 하다. 추사와의 의를 끝까지 버리지 않았던 이상적, 그리고 허련의 관계, 허련은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던 추사를 수 차례나 찾아갈 정도였으니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하겠다.
단촐한 초가지붕 하나에 욕심 없이 텃밭에 가꾸어진 녹차밭 그리고 한적함이 좋았던 때를 떠올리며 옛 기억을 되짚어 일지암에 왔다. 이곳 또한 세월을 비껴 갈 수는 없었나 보다. 고절한 인품의 향기와 넓고도 깊은 숲의 푸르름으로 아름다운 곳. 일지암 툇마루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스님들의 수행 공간이란다.
심히 궁금하지만,
내면의 세상
그 이치를 깨닫고 있고
'참 나'를 발견하고자 수행함에
나도 네게 보여 줄 수 없기에
나도 아니 들어갈란다.
인연 / 현월
우리 서로 인연하여 삽시다
잠시 쉬었다 가는 人生의 한 방랑길에서
서로 사랑했던들 그게 무슨 罪가 되겠습니까
우리 서로 그만한 거리를 두고 삽시다.
가까워지면 너무 멀어질까봐 두려워 하는 것
이것이 다 人生의 공상이라 하였거늘
우리 서로 잊으며 삽시다.
내가 너를 잊어가듯 너 또한 나를 아주 잊어도 좋고
이것이 집 없는 나그네의 고독이라니
이런 고독쯤 가슴에 품고 산들 어떠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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