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고리력 11번째의 달. 1년 중 11월의 중순에 들어섰다. 나무 한그루에 매달린 수만 개의 가을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는 맑도다. 옅은 구름빛은 포근해 보이나 강천사로 향하는 동안 가지런하게 잘 정리된 들녘의 논과 밭에는 종이장처럼 얇게 내려앉은 하얀 서리가 새벽공기를 더 차갑게 만든다. 내 욕심만 채우려는 것일까. 붙잡고 싶다. 달리는 차창에 담겨진 모든 것들과 스쳐가는 가을을 말이다. 가을의 끝자락에 매달려 아직 떠나가지 못해 나무에 매달린 파릇한 녹음.... 나무와 생명은 곧 다가올 혹독한 추위를 견뎌내야 하기에 대지 아래로 깊숙히 내려 앉는다. 햇살이 쌓이고 그리움도 쌓여가는 날 11월의 가을은 그렇게 땅으로 아래로 내려앉았다.
秋風辭 (추풍사)
秋風起兮白雲飛 가을바람이 일고 흰 구름 나는 도다.
草木黃落兮鷹南歸 초목은 누렇게 시들어 떨어지고 기러기는 남쪽으로 돌아 가도다.
蘭有秀兮菊有芳 난초는 빼어나고 국화는 향기로우니,
懷佳人兮不能忘 아름다운 님 그리워함을 잊을 수 없도다.
泛樓船兮濟汾河 다락 배를 띄워 분하를 건너려고,
橫中流兮揚素波 강물을 소리지르니 흰 물결 날리도다.
簫鼓鳴兮發棹歌 퉁소불고 북소리 울리고 뱃노래 부르는데,
歡樂極兮哀情多 즐거움이 다하니 슬픈 마음 많아지네,
少壯幾時兮奈老何 젊고 씩씩한 날이 얼마나 되리요? 늙어 감을 어찌할꼬
한(漢) 무제(武帝) 유철(劉徹ㆍ서기전 157~서기전 87)은 현재의 산서성 중부인 하동군(河東郡) 분양현(汾陽縣)에 행차해 토지신인 후토(后土)에 제사를 지내고 분하(汾河)에서 이층 누각이 달린 배를 탔다. 배 안에서 신하들과 술을 마시는 중 소소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남으로 날아가는 기러기를 보고 갑자기 감회가 일어 추풍사(秋風辭)라는 유명한 시를 지었다.
물과의 만남, 물을 좋아해 새벽을 여는 사람들 수인지교(水人之交)와 강천산으로 추계산행을 떠났다. 봄에 이어 공식행사는 두 번째지만 가정사와 개인적인 일정 등으로 산행에 참여하는 분들은 그리 많지가 않다. 오래전부터 추진해 왔던 것이고 예정된 일정에 맞춰 움직이기에 날짜를 당기고 늘릴 수 있는 처지가 못된다. 지난주 어느 블로그에 올려진 최근 강천사의 아름다운 풍경 사진을 보며 아직 볼만한게 남아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나는 이것을 가을이라 칭한다. 우리가 내딛는 발걸음과 몸짓 하나 하나에 가을빛이 깊숙히 스며드는거라고 그들에게 말 하였다. 강천산 가는 길에는 연하고 고운빛의 낙엽이 수북히 쌓였고 나무에 매달린 때늦은 나뭇잎도 분위기에 한 몫을 더한다.
어쩜 이렇게 만수르하게 가을이 물들었까!
앞 뒤 두 갈래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은 전혀 다른 분위기와 색감, 그리고 그 깊이가 달랐다.
형형색색의 단풍, 내 마음 물들이고자 손으로 매만진다.
그것은 떠나갈 님 붙잡지 못해 가슴 아파하는 마음과도 같음이다.
이별은 슬픔과 고통이 따른다.
마치 저녁에 지는 해처럼 이별은 스스럼 없이 다가온다.
누구에게나 쓰디쓴 이별의 순간이 찾아오기에 흔히 인생을 회자정리(會者定離)라 한다.
그러나 나의 이별은 황홀하고 아름답다.
일순간 모든 것을 쏟아버릴 것만 같은 쓸쓸함과도 같은 빨강, 분홍, 노랑의 감정들....
곱고 처연한 단풍은 참 아름답게 물들었다.
가을...
가을에는 높고 푸른 하늘이 있고, 길가에 코스모스가 피어 있으며 국화꽃은 화분에 가득 담겨져 있다. 그리고 고운 빛깔로 물들어가는 단풍 나뭇잎들.. 또 하나는 나무에서 떨어져 내려 가을 바람에 이리저리 둘러다니는 낙엽이 있다. 같은 나무의 낙엽이라도 모양과 색깔이 다 다르다. 수채화 같은 그림이 있는 가을의 풍경이 나는 너무 좋다.
정승호 시인의 '내가 사랑하는 사람' 중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너는 나에게 언제부터 다가 왔던가? 초록으로 피어 몸이 영글지 않았던 오월. 끌려가는 것과 끌려오는 것이 아닌 어제도 오늘처럼 여전히 시들지 않은 꽃이었으니 겁없이 바닥에 쌓여만 가는 것이 바로 너였더냐 곧 잊혀질거라 하며 바람은 붉게 물든 나뭇잎을 흔들어 탈탈 털어보지만, 그리하여 한 뼘씩 조금씩 너를 지워갈 수 있다면
가을이 가네 / 용혜원
빛 고운 낙엽들이 늘어놓은
세상 푸념을 다 듣지 못했는데
발뒤꿈치 들고 뒤돌아 보지도 않고
가을이 가네
내 가슴에 찾아온 고독을
잔주름 가득한 벗을 만나
뜨거운 커피를 마시며 함께 나누려는데
가을이 가네
세파에 찌든 가슴을 펴려고
여행을 막 떠나려는데
야속하게 기다려 주지 않고
가을이 가네
내 인생도 떠나야만 하기에
사랑에 흠뻑 빠져 들고픈데
잘 다듬은 사랑이 익어 가는데
가을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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