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은 역시 설악이었다.
잊어서는 안될 기억 중 하나이기에 기분 좋을 대로 설악을 자주 부르고 싶다.
아주 먼 이별은 아닐 거라는 먼 약속을 하였지만 떠나온 곳을 돌아보지 말자 .
다만,
섭섭한 마음이 들거든 가을볕 내리쬐는 봉정암 사리탑 평탄한 돌바닥에 앉아 불심(佛心) 가득히 성불을 외치며 영혼의 슬픔을 잠재우고 울컥하며 올라오는 뜨거운 그 무엇이 목에 걸렸다는 핑게 삼아 울어보고 싶은 곳, 해가 기울던 어느때 날카롭게 으르렁 대던 용아의 모습을 감흥에 젖어 다시 떠올려 보고 싶다. 양지바른 산비탈 오세암 동자전(童子殿) 추녀 끝에서 익살맞게 흔들거리며 울어대는 풍경소리와 늦가을 아직 발길 떼지 못한 수줍은 듯 붉게 물들어 있던 외로운 단풍나무 한그루를 나는 오래도록 기억할 것이다.
설악(雪岳) 해발 1,708m.... 주봉은 대청봉으로 남한의 한라산, 지리산 다음으로 높도다. 찾았던 그 날 오세암 처마 밑 단풍나무 한그루만 남겨 놓고 온산은 뼈처럼 앙상하였으니 일년 중 5달은 눈으로 덮혀 있다고 하여 설악(雪岳)이라 한다. 11월을 코앞에 두고 여행길에 나섰던 불찰, 그리고 단풍을 기대했던 과분한 사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초롱한 별이 태양에 녹아 없어지기 전 어둠을 뚫고 한계령을 오른다. 동해의 붉은 태양을 시작으로 어제의 하루을 이어 받아 대청봉을 오르는 길에는 칼
어딘가는 남으로 갈테고 끊어진 맥을 타고 넘어 희미한 백두로 이어지지만 내 눈에 펼쳐진 산은 여기까지다. 대간으로 가는 길이 나에게도 열어졌으면.....
한 그루 외로운 소나무 뒤로 사면의 한계령을 바라 보았다.
아이폰을 꺼내 MP3에 담아놓은 양희은의 한계령을 듣는다.
달리는 버스에서 그리고 아직 어둠으로 뒤덮힌 한계령에 도착할 때까지 말이다.
산행은 한계령부터 시작 되었다.
정덕수 시, 하덕규 곡, 양희은 노래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가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한계령은 작곡가 하덕규가 고뇌가 극에 달하고
자살의 유혹을 느낀 상황에서 설악산 한계령에 올라 만들어낸 곡이라고 한다.
한계령에서 / 장덕수
온종일 서북주릉(西北紬綾)을 헤매며 걸어왔다.
안개구름에 길을 잃고 안개구름에 흠씬 젖어
오늘 하루가 아니라 내 일생 고스란히
천지창조 전의 혼돈 혼돈 중에 헤메일지.
삼만 육천오백 날을 딛고 완숙한 늙음을 맞이하였을 때
절망과 체념 사이에 희망이 존재한다면
담배 연기 빛 푸른 별은 돋을까
저 산은,
추억이 아파 우는 내게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고
발아래 상처 아린 옛 이야기로
눈물 젖은 계곡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구름인 양 떠도는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홀로 늙으시는 아버지
지친 한숨 빗물 되어
빈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온종일 헤매던 중에
가시덤불에 찢겼나 보다
팔목과 다리에서는 피가 흘러
빗물 젖은 옷자락에
피나무 잎새 번진 불길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애증(愛憎)의 꽃으로 핀다
찬 빗속
꽁초처럼 비틀어진 풀포기 사이 하얀 구절초
열 한 살 작은 아이가
무서움에 도망치듯 총총이 걸어가던
굽이 많은 길
아스라한 추억 부수며
관광버스가 지나친다.
저 산은
젖은 담배 태우는 내게
내려가라
이제는 내려가라 하고
서북주릉 휘몰아온 바람
함성 되어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 산, 저 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얼마나 금강으로 가고자 하였으면 되돌아 갈 수 없는 설악에 멈춰 섰을까..
중청 대피소에서 바라본 대청봉
그리고, 산
처음은 없더라.., 물론 계절을 놓쳤고 가을의 만추도 없었다는 것을 한계령에 도착한 후에 알게된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대청봉을 향하는 동안 용아를 오른다는 실낱같은 기대와 희망을 품었었다. 오세암 만경대 끝자락에서 저 용아를 하염없이 바라 보아야만 했던 찌질함은 또 무엇이더냐...
뭐지? 흰수염고래가 산으로 놀러 왔나!?@$%#
봉정암 사리탑과 용아릉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이름 붙여진 봉정암(鳳頂庵)은 내설악 백담사의 부속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3년(644년)에 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봉안하려고 시창 했다고 한다. 그 이후 원효대사와 고려 보조국사와 조선의 환적스님과 설정스님이 다 쓰러진 암자를 다시 중창하여 오늘날까지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는데 일반적인 불심을 가신 사람이라면 백담사에서 이곳 봉정암 가는 길은 참으로 힘든 극기의 연속일 것이다.
하산길 그 오르내림은 얼마나 심하였던지 숨이 꼴까닥 넘어갈 지경까지 이르렀으니...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산신령은 얼마나 애간장 녹았을꼬.... 분명 백담사까지 뒤따라와 산아사리 형님과 내게 구름 신발을 신겨 줬을거야 ~~~
이 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이라 한다.
삶과 죽음 찰라의 순간
늙음은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것이지만,
나는 어디로 갈 것인가?
실컷 살다가 막상 떠나는 날이 다가오면
어디론가 가야할 것이다.
당신들은 어디 갈때나 있는고?
쯧쯧.. 불쌍한지고....
허.......(깊은 한숨)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웅장한 용아장성을 눈으로 바라보다
봉정암 불뇌사리보탑에서 20여 미터를 오르면 용아장성 암릉이 장쾌하게 펼쳐지는데 마침 심심치 않게 소나무와 외계인이 지구별 놀러 왔다가 적응을 못해 굳어버린 듯한 바위 하나가 눈앞에 보인다. 이곳은 공룡 이빨이니까...혹, 공용 이쑤기개?? 나름 조화를 이룬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하며 찾아보니 "곰바위" 라고 한다.
무슨 이유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산악회 차량은 당초 예정된 시간 보다 훨씬 늦은 시간에 한계령에 도착하였고 그로인해 하산 시간도 어둑해질 무렵에야 백담사에 도착해 결국 무박 3일 산행이 되버리고 말았다. 용아는 출입통제구간이도 하며 요즘 단속이 심하다는 이유로 아쉬움을 남긴 채 오세암으로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 아래에 있는 암자.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에 속한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643년(선덕여왕 12)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했다. 1548년(명종 3)에는 보우선사(普雨禪師)가 중건했다. 1643년(인조 21)에는 설정(雪淨)대사가 중건했는데, 그에 얽힌 다음과 같은 관음설화가 전한다. 즉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키웠는데, 월동준비차 양양(襄陽) 장터에 갈 때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4세 된 조카에게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음보살)를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너를 보살펴줄 것이다"라 이른 후 새벽에 길을 떠났다. 그러나 장을 보고 신흥사(神興寺)에 도착했을 때 밤새 폭설로 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음해 3월에 돌아오니 법당 안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방 안은 더운 기운과 향내로 가득 차 있고 죽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조카가 목탁을 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다. 조카가 관음상을 가리키며 "저 엄마가 밥을 주고 놀아주었어"라고 하여 대사는 관음상 앞에 합장하며 예찬을 올렸다고 한다. 이와 같이 5세 된 동자가 관음의 신력(神力)으로 살아난 것을 기리기 위해 이곳을 오세암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1888년(고종 25)에 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법당·승방·객사·산신각 등이 있고, 근처에 석물들이 남아 있다. 이 암자는 설악산에 있는 암자 가운데 제일 아늑하며 김시습·보우선사·한용운 등이 거쳐간 곳으로도 유명하다.
백과사전 내용 발췌
오세암 만경대에 올랐다. 설악의 진모를 보며 아쉬운 마음 달래본다.
지는 가을 오는 겨울 무엇이든지 받아 들일테다.
내 얼굴조차 기억하지 않는 날
당신이 내민 손
못 이기는 척하며 받아 잡고
바리바리 싸들고 만나러 갈테니
사양치 말아주오.
오세암 만경대에서...
눈이 숲을 본다 하나 눈이 보는 것이 아니요,
귀가 열려 있으나 소리를 듣는게 아니 듯
닫혀진 마음을 열고 숲을 걸어가면
발걸음은 흥겨움으로 가득할 것이다.
님의 침묵, 깊은 산 백담에 머물렀던 만해 한용운
그 이후 누군가 또 머물다 갔다고 전해 들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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