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9시 절반, 호동마을에 도착하기까지 사리봉과 노적봉 그리고 큰골을 뇌 안에 수 없이 그려 넣었다. 어느 코스로 내려올지에 대해서도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인데다 더욱이 초행길을 혼자 가야 한다는 생각에 머릿속은 온통 순백의 백지 상태다. 마을회관에서 뱀이 꽈리를 틀 듯 몇 바퀴를 돌았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산행 들머리를 잡지 못해 갈팡질팡 우왕좌왕 헤메고 있던 중 마침 들에 심어 놓은 김장 배추를 둘러보러 가신다는 마을 주민의 안내를 받아 사리봉 진입로를 확인한다. 복스럽게 생긴 놈과 작지만 하이에나 처럼 다부진 체구의 하얀 털복숭이 똥개 두 마리가 주인을 뒤따르더니 갑자기 쏜살같이 내게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덮칠 태세로 헉헉 거리며 거친 숨을 몰아쉬며 달려오는 묵직한 발자국 소리에 등골이 오싹하다. 이런..... 쥑일..... 얼마나 놀랬던지 쪼그라든 심장으로 가슴에 통증까지 왔다. 다행히 스틱을 펴 놨기 망정이지 나는 그 순간 살아남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다한다. 그리고 두 놈을 향해 사정없이 휘둘러 댄다. 허나, 스틱을 허공에 혼자 휘젓고 있는 지랄맞는 나의 행동이 우수꽝스러웠던지 두 놈은 가만히 앉아 구경하고 앉았고 기찬묏길에 금실 좋게 서 있는 두 정승도 나를 보며 한참을 웃고 있다. 한심한지고.... 가방에서 소세지 하나를 꺼내 두 놈과 눈인사를 나눈 뒤 선답자의 사진을 쫒아 동분서주하며 갈 길을 재촉한다.

 

 

 

 

호동골 초입에 들어서면 대나무 길과 폐허로 방치된 조립식 건축물을 만난다. 우측으로 돌아 사리봉 들머리를 찾아가던 중 고상한 나무와 평탄한 바위에는 과일과 음식이 놓여져 있었고 그 앞에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암시하 듯 아직 굳지 않은 촛농의 흔적까지 선명하다. 주변을 둘러 보니 제사를 지낸 듯한 과일과 음식들이 군데군데 즐비하게 놓여져 있었기에 주변을 세세히 둘러 보기로 한다. 산속에는 움막도 보이고 사람의 말소리도 들린다. 미신을 믿지 않지만 호동골 주변 산세의 음산한 기운 때문인지 빨리 그곳에서 벗어나고만 싶었다. 길이 아닌 길, 사람이 거의 밟지 않은 땅을 밟고 지나간다. 아마 다시는 내 걸음이 이곳에 닿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되뇌이고 다짐에 다짐을 하며 사리봉을 향해 수직의 암벽도 마다 않고 없어진 길을 뚫고 오른다. 깊고 높은 예상치 못한 곳에 자리한 허름한 묘를 보며 헛기침으로 산을 깨워야 하는 대략 난감한 순간이다. 사리봉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더 험하다. 옷이 찢겨기고 얼굴과 손에는 가시와 나무가지에 긁혀 상처 투성이다. 앞 길을 가로막고 있는 가시덩쿨과 잡목을 제치며 오르다 보면 어느새 능선길에 이르겠지....  

 

 

 

짜릿한 슬랩 구간을 한참 동안 직등하면서 오로지 한 곳만 바라보며 오른다.

사리봉 아래 주변의 풍경은 정말 황홀하였으며 노적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아름다운 비경에 목구멍은 탄성을 토해낸다. 지면 가까이까지 내려 앉은 옅은 구름으로 시야가 별로 좋지 않지만 멀리 굽이쳐 흐르는 영산강의 물줄기와 가을걷이를 끝낸 영암의 시원스런 들판이 마음의 위안을 준다.

 

 

노적봉을 향해 가는 동안 길은 여러갈래다.

이 길이다 싶어 가다보면 끊겨 있고 어딘가로 향하는 낮선 목적지를 향하고 있어 전후좌우 오고가기 알바를 몇 차례 반복하며 노적봉에 이른다. 

 

 

천황봉과 우측의 구정봉을 바라보며.

 

 

조선시대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火乘朝天)의 지세'라 표현 한다.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기를 내뿜는 기상'이라는 뜻으로 월출산이 내뿜은 기의 크기를 설명하고 있다. 

 

 

 

노적봉 가는 숲에서 월출은 마지막 가을 꽃을 피워냈다.

 

 

 

 

 

 

 

 

 

가다 보니 우측에 도갑사가 보이고,

 

 

 

미왕재가 가까워질 무렵 어느 한적한 곳에서 허기진 배를 채우며 좌측의 노적봉과 지나왔던 능선 아래 희미한 대동제를 되돌아 본다.

 

 

 

 

주말을 맞아 전국 각지 산악회에서 월출산을 찾았다. 구정봉에 앉아 천황봉을 바라보니 정상에는 산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 함복민

 

당신 품에 안겼다가 떠나갑니다.

진달래꽃 술렁술렁 배웅합니다.

앞서 흐르는 물소리로 길을 열며

사람들 마을로 돌아갑니다.

 

살아가면서, 늙어가면서

삶에 지치면 먼발치로 당신을 바라다보고

그래도 그리우면 당신 찾아가 품에 안겨 보지요

그렇게 살다가 영, 당신을 볼 수 없게 되는 날

당신 품에 안겨 당신이 될 수 있겠지요.

 

 

 

 

어느 필자에 의하면 월출산은 한 마리 용이 동쪽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한다. 천황봉을 머리로 해서 구정봉과 향로봉.노적봉이 몸통이고, 주지봉과 문필공이 꼬리라 한다. 머리쪽에는 사자봉.장군봉. 천황봉이 자리해 웅장한 모습과 함께 월출산다운 멋스러움을 보여준다. 다음 저 건너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달구봉과 양자봉의 두 봉우리를 넘어 보고자 한다.

 

 

 

 

 

 

조망터에서 바라본 3층 석탑

 

 

 

통일신라 시대에 만들어진 높이 8m의 국보 제144호 월출산 마애여래 좌상 []

 

 

구정봉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위치한 3층 석탑은 마애여래좌상과 약 150m 정도 거리를 두고 위태로운 자태로 서로 마주하고 있으며 한 그루 소나무를 벗 삼아 외로움을 달래며 성불을 노래한다. 현재 1층 탑신과 3층까지의 탑에서 탑신을 덮은 지붕모양의 옥개석만 남아 있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하는 것은 불가하다고 한다. 나는 낡고 오래된 것들에 대한 공간적, 시간적 미학의 평온이 깃든 곳에서 물 한 모금 마시며 한참을 머무르다 간다.

 

 

1996년 복원한 높이 4.7m의 보물 제1283호 용암사지 삼층석탑의 모습

 

 

용암사지에서 큰골로 들어서길 10여분... 길이 없어진다. 앞으로 남은 거리 3km... 숲에는 혼자이고 이제 시그널도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떠났다. 어디든지 가야만 했다. 산속에서 길을 잃고 허둥댈 때의 초라한 내 모습.. 물론 능선에 이르면 길은 있을 것이고 물줄기와 골을 따라 내려오다 보면 마을에 당도해 사람도 만날 것이다. 하산길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는 동안 체력은 이미 소진 되어 다리에 힘까지 풀려 버렸다. 숲길과 농로를 따라 기찻묏길을 한참 걷는다. 견갑골(날개쭉지)에 담까지 걸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그러나 오늘 힘든 것은 아무렇지도 않다. 또다른 산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배가 고파 더 이상 걸을 수가 없다. 구름은 바람없이 잘도 간다. 근심이 가득한 마음으로 한동안 나를 보지 못했듯이 숲을 나오고 도로 위에 서니 그제서야 산이 보인다. 괴로움의 원천을 벗어 던지고 바라본 산, 산은 그대로 있었건만 어리석은 나는 그것을 여태 보지 못 하였으니..... 산중의 붉은 단풍, 산죽(山竹)으로 이어진 길을 뒤로 하고 사리봉과 노적봉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구름의 장막을 벗어 던지듯 호동마을에 남겨둔 채 집으로 곧장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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