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도(歲寒圖) <23.5×108.3cm>

 

제주도 유배 중 제자 이상적에게 선물한 잣나무와 소나무 그리고 집 한채가 그려진 세한도

얼마전 TV 역사스페셜에서 방영되었던 세한도와 관련된 이야기, 그리고 추사 김정호에 대한 기록들...

내가 아는 만큼 세상은 내 것으로 보인다고 하였던가!! 

그림 하나로 무지한 나를 깨우쳐 주었던 세한도에 대해 알아보고자한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

추사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원춘(元春), 호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이다. 그는 1786년 6월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이에서 영조(英祖)의 부마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의 증손이며, 판서 김노경(金魯敬)의 아들로 태어나 백부 김노영(金魯永)에게 입양되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김정희 그가 그렸던 세한도에 얽혀 있는 내용은 이렇다.

당시 조선의 최고 명문가였던 가문의 배경 속에 학문까지 깊었던 추사는 규장각 시교, 성균관 대사성을 거쳐 승승장구하여 마침내 병조참판에 올랐다. 1834년 추사의 지주였던 효명세자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여덟 살의 헌종이 즉위함에 따라 안동김씨와 풍양조씨가 다시 세도를 부리게 된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서 1840년 추사는 동지부사에 결정되어 청나라에 갈 채비를 하던 중  안동김씨 윤상도의 터무니 없는 상소로 인해 대옥사를 겪게 된다. 그로인해 청나라와의 교류가 좌절되는 등  제주도에 유배까지 떠나게 되었다.

추사 나이 59세, 제주에 온지 5년째를 맞고 있던 때에 추사는 아내의 죽음도 모르며 살았으며 활동의 제약과 원인모를 풍토병에 시달린 상황에서 의식도 혼자 해결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헌종의 신임을 받으며 당대의 대표적 역관이었던 제자 이상적은 추사가 좋아하는 책과 귀한선물을 가져다준다. 당시 권세와 이익만을 쫒던 다른 인물들과는 다른 이상적의 의리...그러기에 추사와 제자 이상적과의 관계는 특별한 것이었으며 지조와 의리를 지킨 고마움으로 세한도를 선물하게 된다.

 

다음은 세한도의 발문이다.

지난해 <만학>과  <대운> 두 문집을 보내주더니 올해에는 우경의  <문편>을 보내왔도다. 이는 모두 세상에 흔히 있는 것도 아니고 천만리 먼 곳으로부터 사와야 하며 그것도 여러 해가 걸려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쉽게 단번에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은 흐르는 물살처럼 오로지 권세와 이익에만 수없이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이 상례인데 그대는 많은 고생을 하여 겨우 손에 넣은 그 책들을 권세가에게 기증하지 않고 바다 바깥에 있는 추췌하고 초라한 나에게 보내 주었도다. 태사공이 이르기를 '권력으로 합한 자는 권력이 떨어지면 교분이 성글어 진다'고 하였는데, 자네는 결코 그러하지 않으니 태사공의 말이 잘못된 것인가.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날이 차가워져 다른 나무들이 시든 뒤에야 비로서 소나무와 잣나무가 여전히 푸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했는데, 지금 그대와 나의 관계는 전(前)이라고 더한 것도 아니요, 후(後)라고 줄어든 것도 아니다, 아! 쓸쓸한 이 마음이여! 완당노인이 쓰다.

 

세한도를 받은 이상적은 스승 추사의 고마움과 감격스러움, 그리고 감동을 담아 감사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상적은 세한도를 현재의 베이징인 연경에 가져가 청나라 지인들에게 추사의 곤궁함을 알리고 그를 귀양에서 풀려는 노력을 하며 제영 13수를 받는다. 그리하여 또 한번 세한도는 시.서.화가 어우러진 최고의 걸작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세한도는 일제강점기에 추사연구가였던 일본인 후지츠카 지카시가 일본으로 가져갔었지만 진도출신 서예가 손재영이 1944년 태평양 전쟁중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츠카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세한도를 되찾아오게 되며 얼마후 후지즈카의 집은 미군의 폭격으로 잿더미가 되어 비운의 최후를 맞지만 세한도의 운명은 계속 이어진다. 

세한도는 삼성미술관과 기업가이자 미술품 컬렉터인 손창근씨에 의해 소장되고 있다가 지난 2010년말 2년 기한으로 기탁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이 보관하고 있기까지 긴 여정을 통해 국보로 만들어졌다.

또한 세한도에는 독립운동가인 오세창과 이시영, 정인보의 발문이 있으며, 그들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알 수 있다.

 

 

 

세한도

 

뼈가 시리다

넋도 벗어나지 못하는
고도의 위리안치 찾는 사람없으니

고여있고 흐르지 않는 절대 고독의 시간
원수 같은 사람이 그립다 누굴 미워라도 해야 살겠다

무얼 찾아냈는지 까마귀 한 쌍이 진종일 울어
금부도사 행차가 당도할지 모르겠다

삶은 어차피 한바탕 꿈이라고 치부해도
귓가에 스치는 금관조복의 쓸림 소리
아내의 보드라운 살결 내음새
아이들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끝내 잊히지 않는 지독한 형벌

무슨 겨울이 눈도 없는가
내일 없는 적소에 무릎 꿇고 앉으니
아직도 버리지 못했구나 질긴 목숨의 끈

소나무는 추위에 더욱 푸르니
붓을 들어 허망한 꿈을 그린다

(제17회 정지용 문학상 당선작 /시인 유자효의 詩)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也

날이 추워진 연휴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홀로 시들지 않음을 안다.....

 

어느날 자그마한에 감동으로 다가왔던 세한도

그 기억과 감동을 잠시 더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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