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잎새가 떠난 뒤
숨길 수 없던 황량한 마음을 가을이 위로한다.
아침 햇살 가득 머금은 돈지 포구는 한적하기 그지없다.
폐교된 사량도 돈지분교장 뒤로
잘 정비가 되지 않은 산길엔
섬의 명성만큼이나 잡초가 무성하다.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돌탑 사이 한 그루 벚나무에
시선을 빼앗겼다.
계절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듯
봄이면 먼저 환한 꽃으로 피워냈고
바람이 식으면 붉고 화려하게
제일 먼저 가을 옷으로 갈아 입는다.
논길을 지나고 밭 사이로 이어진 짧은 길을 걷다 보면
고향마을 어머니 만나러 가는 것마냥
오히려 친숙하고 좋더라.
흙먼지 일으키며 친구들과 해질녘까지 마을에서 어울려 놀다
개밥바라기별을 데리고 집에 갈 시간이면
논둑길 넘어 황소가 집을 찾아오고
집집마다 굴뚝에는 솔가지 태우는 연기로
마을이 훈훈해지던
그때 그 냄새가 그립다.
나는 가끔 시간을 저울질하며 달린다.
환해진 바깥세상으로 삶의 희망을 끌어내듯 말이다.
지리망산 사량도
절골의 그림자마다 가을 색이 짙다.
나는 몇 번이고 머리를 들어 바다건너 백운산과
남해 먼바다를 바라본다.
하늘은 싱싱하게 푸르고
파닥이는 하얀 깃털은 부추기는 솔바람을 타고
끝없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다.
막막함에 올려다본 하늘
그리고 쪽빛바다와 마주하는 순간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섬마을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산 능선에 놓인 다리에서는
메아리도 쉽게 건너질 못할 높은 곳이라
새가 되어 날아가야 한다.
주말에는 찬바람이 많이 불었고
나무는 노란비늘을 벗어 앙상하다.
가을이 밀려가는 것이 보이고 묘연해져
숨이 턱 막혀온다.
11월은 분별하기 어려운
아득한 사랑이 떠올라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순처럼
가슴 아픈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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