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는 허파 깊숙히 파고든다.

희끗한 풍경은 허공에 퍼지는 대도

초록의 생명은 끈질기게 숨을 쉰다.



희끄무레한 아름다움

뚜렷하지는 않지만

기억의 잔상으로 오래 남을 듯한 풍경이다.

더렵혀지지 않은 하얀 하늘에 맞닿은 내 시선



구름에 가려진 하늘

산골을 타고 밀려오는 바람

가만히 쓸어 담는다.



다시 찾은 덕유산

중복에서 서봉으로 향하는 눈길

풍경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덕이 많다고 했는데

내가 오는 날

덕유의 하늘은 좀체 열리질 않는다.



잠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고

마음이 그렇게 하라고 가슴에게 시킨다.

그래서 말인데

나뭇잎 사이로 바람은 스쳐가듯

지금 만큼만 바람이 불어주길 바란다.



건성으로 내던져진 시선

나의 발목을 붙잡는 마음

이 순간 나는 어디로 흘러갈 것인가.


 

사람들의 행렬이 끝날 무렵일까

아니면 그 시작을 알리는 것일까



참빗으로 가르마를 타듯

뒤로 한 발 한 발 물러나 조용히 길을 걷는다.

능선의 초록과 연분홍 철쭉이

아직 말을 한다.



자신의 증명을 위해

수많은 존재들이 이 길을 비켜 갔을 테고...



홀연히 떠났던 길

그 길 옆으로 비켜서 뒤를 돌아보았다.

더 나아 갈 수 있으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말없이 운무를 지켜보는 시간.



연분홍 철쭉은

무엇이 수줍었던지 몇 송이 남겨두고

땅아래로 숨어버렸다.



비오는 날의 오후..

며칠째 햇님은 결근이고

하늘은 심통을 부려 우거지상을 하고 있다.




하이얀 햇살은 아니지만

투명한 빗줄기에

초록 잎사귀 팔랑거리는 덕유 중봉

주말마다 내리는 비로 산이 뿌옇다.



집착을 하게 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신경 쓰일 수 밖에 없다.



살아보면 사는 것도 별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고

산에 오르면 느끼게 된다.

높은 산봉우리를 보면

언제 오를까 걱정이 앞서 한숨을 내뿜지만

오르다 보면 올라지는 것이 산이고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계절은 노란 봄으로 시작한다.

아직 남아 있는 옅은 빛깔 철쭉

사람의 발을 붙잡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는 걸까.

저 꽃도 바람 한 번 불면 지고 말 텐데 말이지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

생을 다 채우려면

얼마나 긴긴 시간을 보낼까

주목나무는 하루의 시간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루살이와 인간, 그리고 나무



어둑한 새벽 숲

이름 모를 산새 소리

청량한 산바람

시원한 물줄기

세상을 잠시 잊기 위해서

나는 산을 오른다.

 

물은 버릴 것이 있는지

자꾸 아래로 뱉어낸다.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신음소리...


비 내리는 덕유산

산에 비가 내려서 서둘러야 했고

하얀 구름이 몰려오면

밝음의 한가운 대로 나는 걸어갔다.


며칠 전 아침이면 꽃천지였을 덕유 평전

골 따라 올라온 산바람은

구름을 몰고 와서는 산을 한 번 휘감고

앙상하고 생기 없는 구상나무에도

소리 없이 지나간다.


겨울 덕유산

두텁게 덮인 하얀 설국은 없고 

설천봉의 황량함과 고요한 빗방울로

산을 적시니

함께한 벗들도 몸과 마음이 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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