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월산[秋月山]
호수에 올려진 구름 한 조각
빛나는 달빛은 추월산 암봉에 걸터앉는다.
오색 수채화 물감으로 산허리가 곱게 물들면
가을은 아름답다고 말할 거다.
장마철도 아닌데 며칠간 아침 저녁으로 비가 오락가락 내리더니
새벽 4시가 지났음에도 창밖의 비는 멈출 줄 모르고
옅은 연무는 대지를 뒤덮어버렸다.
눈을 떴으니 가자
담양호가 바라다보이는 추월산으로 향한다.
금성산성과 보리암은 시간을 잘 이겨내고 있는지 궁금하였고
어스름한 새벽에 떠났던 발길은
뒤따르는 풍광이 궁금하였던지
자꾸 몸을 돌리게 된다.
그러한 풍경이 눈에 들어올세라
눈을 질끈 감은 채
절벽 사이로 놓여진 로프에 매달려 전율을 즐기며 오른다.
산 넘어 산
그 위에 올려진 산마루
첩첩산중에는 또 산이 겹쳐지고
여름으로 들어설 무렵
이런 풍경을 구경할 수 있음이 다행이다.
전날 날씨가 좋지 않아 기대하지 않았는데
산에 오른 내 눈은 호강하고 있으니...
비온 후 하늘은 흐리다.
그러나 오월의 산은 푸르다.
푸른산 푸른 산그리메를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열린 듯 시원해지고
복잡했던 머릿속도 맑아진다.
일상을 멈추고 잠시 찾아온 산
아는 사람 하나 없어도 산길에서 만난 사람은
모두가 친절하고 해학이 있다.
지리 능선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져
한참을 내려다 보왔던 희미한 능선들
담양의 들판은 물로 가득 채워져
농기계가 분주하게 움직일 테지만,
오월의 장미가 활짝 피어나는 계절,
나는 추월산에서
산과 산이 연출하는 멋진 풍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스쳐가는 길이지만
추월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가면 신선대처럼 생긴 너른 바위가 있는데
그곳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꼬깔을 뒤집어 쓴 무등산과
병풍산에서 불태산, 백암산, 내장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바라보며
산이 만들어내는 순수함이 내 마음에 들어 차 마냥 행복했다.
축복처럼 느껴지고 그 길에 서 있는 순간만큼은
그리고 오늘 만큼은
나를 위해 기다려준 하루가 아니었나 싶다.
솟구치며 밀려오는 파도와 같이
고요함 속 서슬 퍼런 산 능선에서
새 소리, 바람 소리, 생명의 소리를 들려오니
마음은 녹고 가슴은 뜨겁다.
오늘 같은 날
파란 하늘 아니어도 좋다.
아무런 망설임 하나 없이
거칠고 거세게 밀려오는 파도라 해도
저 산을 바라보며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있으니
걱정할 것은 못 된다.
추월산 보리암은
고려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으며 백양사의 말사다.
보리암 경내 마당은 콘크리트 슬래브로 만들어져 있으며
벼랑에서 구조체를 떠받치고 있는 자태라 매우 위태롭게 느껴진다.
나는 가장자리에 온전히 서 있질 못하겠다.
스님은 난간 끝에 계속 서 계신다.
속세의 궁금함에 그 안을 들여다 보는 것일까
아니면 극단의 점을 향해 치닫는 마음일는지..
산다는 것은 아름답고 애잔하다
바람에 힘없이 드러눕는 풀잎과
저 산아래 투명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찰나 같다는 시간의 흐름을 지켜보노라
그리고는 비루한 마음을 떨어뜨리노라.
20여 년 만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이따금 눈앞에 낯선 풍경이 펼쳐지지만
자주 산에 오르다 보니 모든 것이 낯익다.
이무기로 변신한 구렁이가 하늘로 솟구치는 모습??
더 이상 앞으로 나아 갈 수 없고
나를 향한 물음이 시작 되는 곳
보리암이다.
지난 밤 고통스러웠던 어둠을 걷어내고
여명의 아침이 밀려오면
떠나가 버린 서러움
홀로 몸부림치는 모든 것들을
청푸른 코발트색 물빛에 쏟아 내고 싶다.
바람 한 점 없는 호수는 투명하다.
나무들의 움직임은 고요한데
숲길 걷는 나만 유독 흔들리는 것 같다.
나는 오월의 한나절
숲과 호수를 걸었다.
높고 낮은 나무들
그리고 희미한 산 능선이 아닌
멀리까지 치닿는 내 눈길은
너의 안부를 묻고 찾았다.
내 마음 흔들고 지나가는 것
그건 바람이 아니길....
2016. 0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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