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봉암에서 꼬막재 가던 길은
전날 내린 비로 질퍽거리고 미끄러웠지만,
마른하늘과 마른 바람에 흔들거리는 중봉의 억새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숨을 쉬는 찰나의 시간들...
무더운 여름을 보내고
소슬바람 불어와 의지할 곳을 찾는 동안에도
마른 땅에서 자라 걱정 없이 꽃을 피우며
바람의 숨결로 흔들리는 억새가 부럽다.
끝이 어딘지 모르게 이어지는 삶
그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들
때론 절망이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차라리....
바람이 되고 싶어서인지.....
중봉평원에서 춤을 추었을까!
맑고 고요한 아침
쓸쓸함이 찾아오기 전
경계가 없는 바람의 나라
무등산 서석대 양지바른 바위에 걸터앉아
장불재에서 화순 안양산으로 이어진 백마 능선을 내려다볼 때쯤
오전의 햇살도 점점 가늘어져 간다.
규봉암으로 가는 숲길은 한적해서 좋다.
가끔은 나조차 알 길이 없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산들바람에 마음은 즐겁고
발걸음도 가볍기만 하다.
규봉암 돌계단에 올라 산을 바라본다.
주상절리를 넘어오는 솔바람 소리와
처마에 걸린 풍경만이 한적한 이곳의 적막을 깨뜨린다.
풍경은 미동이 없고
산사에 울려 퍼지는 목탁소리와 염불 외는 소리가
내 오랜 때를 씻겨 내린다.
이 한적하고 조용한 암자에서
세속의 무거운 짐을 잠시나마 내려놓고
평화로움을 가져가라는
산사의 울림
소리풍경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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