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게 물든 단풍
가을과 작별하듯 사랑 하나 그려보는 시월의 끝자락
올 사람, 갈 사람 없는데도 서운해지는 가을이다.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아름다운 날들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
나에게도 그러한 가을로 남았으면
눈물 흘릴 만큼 슬프기도 하지만
눈물이 흐를 만큼 기쁘기도 할 때가 있다.
그래서 가을은 만남의 기쁨 보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그렇게 그렇게 만남의 순간이
짧게 느껴졌다고 했던가....
찬바람 맞더니 금세 시들어버린 나뭇잎들
해남 대둔산 도솔봉 능선의
흔들거리는 억새 춤사위...
그날 기억으론
말 잔등처럼 매끄러운 연화봉 능선에는
가을빛 소슬바람에 휘청거리며
온몸으로 비벼대는 억새와
풀밭에 나뒹굴던 바람은
그들의 간절한 입맞춤이었고
가을 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슬프다
떠나는 이 가을이...
헤어짐의 순간들이...
어둠이 짙은 새벽
별빛이 밝다.
정해지지 않은 목적지였지만
태양이 고개를 내밀고 있을
그 시간을 쫒아가기로 한다.
언젠가 걸어 보리라 마음에 담아 두었던 곳
빗나간 일기예보~ 바보~
구름은 걷히고 밤하늘 별빛은 참 밝더라
일출 산행을 결정한 후
바다와 가까운 남으로 급 회전한다.
일상에서 느끼지 못하는 소소한 행복
특별한 곳에서
특별한 아침을 맞이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은 그런 산에 있기를 늘 원했다.
차에 몸을 싣고 스치듯 지나가는 시간들
지나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이 차장에 그려지는 때
작은 거울 하나로 나를 찾아보기도 힘들다.
잡생각 떨쳐내고 해남 투구봉으로 향한다.
투구봉 정상을 향한 발걸음
목구멍까지 숨이 차 올라도
견뎌 낼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이르면
마음의 위로가 있기 때문이다.
안개와 미세먼지로 인해
청해진 남쪽 바다의 시원스러운 조망을 보지 못했지만
그날 아침도 내겐 특별하기에
게으름을 탓하지 않으리라.
이렇게 살아도 저렇게 살아도
세월은 비켜간다.
목적지를 향한 발걸음
그곳에 펼쳐지는 세상
두륜....
순간순간 살아 있음으로 알게 되고 보게 되는 어지러움들
투구봉에서 바라본 좌측 두륜봉과 낙타 등처럼 움푹 파인 만일재
그리고 두륜 주봉 가련봉
지난해 보았던 몽환적 세상은 없고
대신 안개와 미세먼지가 가득한 흐릿한 세상이다.
홀연히 다가온 우연을 막연히 기대하다가
확연해져 갈 즈음에는
우리는 인연이라 믿는다.
그것은 시절 인연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기가 있듯이
만남과 이별은
어떠한 목적을 두고 이루어지거나
아무런 이유가 없이 그 끝을 맺지 않는다.
띠밭재 잡목 사이에서 자라는 가시덤불은
가을이라 그런지 그 끝이 단단하면서 날카롭고 억새다.
땅끝 기맥 산죽 길을 통과하는 동안 성한 몸이 없을 정도로 험하지만
이미 가을의 배려를 알았을까
도솔봉 송신탑에 올라 우측 연화봉으로 방향을 돌린다.
골짜기 사이로 붉게 물들어가는 시기
하늘을 보았다. 햇빛이 빛나는 하늘을 옅은 안개가 눌러 버렸지만
하늘은 초록을 밀어내고 가을을 불러 들인다.
도솔봉에 바람이 분다.
오후의 햇볕은 따스하다.
오전 동안 소모된 에너지를 보충하는 동안에도
눈꺼풀이 내려 앉아 잠이 몰려온다.
하늘에 맞닿은 곳
하늘 공원이라 말한다.
계절은 변하고
붙잡아 둘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듯이
때가 되면 풀잎은 시들고
지나간 것은 모두가 그립다.
이 길 위에서 느꼈던 가을은
다가올 어느 순간에 나를 불러 들일 것이고
나는 또 이곳을 찾을 것이다.
부드러운 감촉
산사에 들어서면
포근함이 있다.
그래서인지 절 보다는 절로 들어가는 길이 좋고
그 주변의 풍경에 마음을 빼앗긴다.
마음이 편하고 안정된 기분
불심 보다는 편안한 마음인 것이다.
혼자 걷는 산길도 좋고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산길도 좋다.
떠나지 못하는 발걸음
지나온 두륜산과 억새밭 대둔산의 풍경들
고요함.
바람이 쉬어가는 곳.
관음암이었던가
처마 끝 풍경소리 조차 고요하다.
꼬옥 잠가 둔 법당 출입문
불상만이 가부좌로 틀고 앉아
허물어져가는 세월과 함께 할 것이다.
관음암 오름길
오랜 세월 무수한 길을 밟고 간 인연과 사연이 있었으리라
풍경 달린 처마 너머로 먼 산을 바라보는 때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친구 아들이 그립고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모든 기억들이 그립다.
수없이 두륜산에 올랐지만
마치 처음 와 본 느낌들
달력을 들춰 보았다.
핸드폰에서 알람이 울려댄다.
그날을 잊을까 봐 기억해 놓았다.
하루가 마무리될수록
주체할 수 없이 간절한 눈물이 마음속에 흐른다.
그 곱던 얼굴도 세월을 못 이겨 하나 둘 주름지고
마음은 갈팡질팡 고향 하늘을 그리고 있다.
이것도 지나고 나면 다 한때려니
몸은 산에 있었지만
마음은 엄마 품에서 하루를 보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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