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빛 물든 산사의 고요함
맞배지붕 기와에 얹혀진 오후의 가을 햇살
공포를 떠 받드는 배흘림기둥
낡고 오래된 초석은
삶의 무게 만큼이나 큰 집 하나를 머리에 이고 있다.
빛바랜 단청과 흙미장한 벽체
오래전 기억을 더듬어 찾았던 무위사 극락보전은
정갈하면서도 소박, 단순함
그리고 멋스럽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美를 갖추고
나를 끌어 당기고 있었다
뒷편 대나무숲을 지나
낙엽 두텁게 깔린 숲길을 걷다 보니
아침 해는 어느 이름없는 산마루에 떠오르고
향로봉 좌능을 끼고 서서히 올라 미왕재에 다다른다.
한 발짝 다가서면 타버릴 것만 같았던 여름도 지나고
이제 산에서 바람을 들이키면 가을이구나 싶다.
초록의 잎도 갈잎으로 변하고 마른가지 하나 둘 늘어만 갈 때
너른 평온에 핀 억새는 세월과 함께 바람에 흔들거린다.
가을 길을 걷는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낙엽 짙게 깔린 산길을 걷다가도
양지바른 돌 마당이 펼쳐지면
각자 배낭에 담아온 음식과 과일을 서둘러 빼 놓는다.
소소하지만 산에서 나눠 먹는 즐거움도
산행의 묘미에 한 몫을 한다.
잠깐의 쉬는 동안
산길에서 반가운 사람이라도 만나게 되면
기분 좋아 어쩔 줄 몰라하는 행동처럼
하루가 행복으로 가득 차게 된다.
가을이 우리를 산으로 부르면서 신경써 주는
작은 배려와 특별함이 아닐까 싶다.
천황봉 다음으로 높은 월출 제2봉 향로봉
향로봉에는 제 몸 하나 가눌 수없을 정도로 바람이 드세다.
멀리 천황봉과 마주하며 발 아래 구정봉에서 홀로 자유를 만킥하던 산객의 모습이 여유로웠다.
향로봉 정상의 바람과 맞서고
때로는 가을볕을 온옴으로 담으며
늘어지게 자던 낮잠과
배부르게 먹었던 팥죽은
지난 밤 부족한 잠 수면제가 되어
꿈속으로 깊게 빠져들게 하였다.
살갗을 스치는 맑은 바람 한 점에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면 그것은 미련이다.
그래서일까 마음 속에 묻고 살아가야 할
말과 생각 때문에 무거운 짐이 많은가 보다.
구름 사이로 고개를 내민 아침 태양을
작은 바위에 올라 바라 보았다.
잠시동안 홀가분한 마음
그것은 바람이었던가.
강진무위사 극락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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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내내 고왔던 잎과 꽃들
이제 신음하며 멈춰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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