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갑한 마음에 불어오는 답답한 바람 한 점.

무심함으로 귓가에 맴돌다 새어 나오는 내 한숨과 섞여 쓸쓸함으로 멀어지는 바람 한 점.

생각해보면 내게 불어오고 불어가는 것이 아니라 부는 바람 사이로 내가 끼어든 것이다.

이전부터 마음에 불고 있었을 바람인데 말이다.

살면서 내가 마주친 모든 것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내게 다가온 것들이 아니라 내가 다가간 것들이었고

모든 것은 다가오고 떠나간 것이 아니라

실상 내가 다가가고 떠나왔던 것이다.

내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왔던 신발

흙길이어도 괜찮았고 물길이라도 두려워 하지 않았다.

잠깐 쉬는 시간의 두 다리는 어디로 향해 갈지 내게 묻는다. 

 

 

이데올로기의 상처 그리고 비운의 병단,

북으로부터 버림 받고 잊혀진 이현상 부대 남부군은

이곳 백무동 인민군사령부 터와 빗점골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빨치산 활동 주무대 지리산에서 씻을 수 없는 역사의 상처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팔월말 지리에 다시 들어섰다. 백무동에 도착하여 칠선을 향해 숲에 들어선다.

이끼와 낡은 돌로 쌓여진 길을 따라 가면서 만나게 되는 무수히 많은 작은 생명들....

 

 

하늘을 보았다. 햇빛이 빛나는 하늘의 녹색 나뭇잎들

계절은 또 인연이라는 색을 띠고 우리를 불러 모을 것이다. 

 

 

옅은 연두빛 싱그러움으로 숲이 뽑아낸 숨결

울창한 숲과 서늘한 그늘이 주는 녹음

그리고 흙과 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숲향기

축축한 산길....

적당한 습기, 서늘한 공기 

이 신선함이 좋다.

 

 

 

칠선폭포에 들어서면서 깊은 안도감에 마음이 편해진다.

이정표를 보면 지금 내가 걸어 온 길이 과연 맞는 길인지

내가 앞으로 어느 쪽으로 가야할 지

어느 정도 더 가야하는 지를 알 수 있지만,

홀로 가는 길, 인생의 길도 마찬가지

이정표가 있고 기다려 주는 시간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우렁찬 폭포소리

주면에 날리는 물안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산에 오면 누구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좋고 싫음을 떠나 공통된 마음 하나로 온 여정길이다.

즐거움이 있으면 다른 마음이 꿈틀거리기 마련이며

사람의 욕심을 쉽게 내려 놓을 수 있겠는가...

 

 

대륙폭포 상부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는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마음처럼 이곳에 자주 올 수는 없다.

그러나 나는 늘 이곳을 마음에 담고 그리워 한다.

 

 

깊어가는 여름 오후의 노곤함

그리고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

지루하지 않은 것은 홀로 걷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뒤에 따르는 보이지 않은 일행이 있지만 기다려 주는 발길이 있고

앞길 제촉하는 일행이 있어 가는 길이 순탄하다.

모두가 함께 하는  길에서 느끼게 되는 설렘 때문인지

오늘따라 발길은 더디고 눈길은 오래 머문다.

 

 

 

 

 

금새 지고 금새 마를 것 같았던 물줄기

끝이 없다.

하늘로 치닫는다 해도

물줄기는 쉽게 끝날 것 같지가 않다.

 

 

 

 

 

 

 

 

 

다이아몬드 폭포 앞에서

 

 

삶의 고단함 잠시 잊고

오로지 너만 바라볼 테다.

 

 

 

어쩌다 형님께서 11자처럼 붙어 있던 두 다리가 

젓가락 찢어지듯 큰 상처가 나셨단다.

힘겹게 오르는 것 또한 삶이려니

하루빨리 쾌차하시고 다시 봄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썩은 나무에서 자라는 천향

그것은 죽은 생명 다시 일으키는 꽃

우담바라와 같은 이끼 꽃

이보다 더 좋은 수는 없다.

 

 

결국 가던 길 멈추고 이끼 천국을 담아간다.

지친 영혼 어루만져주는 숲

난 아무말이 없다. 

 

 

물소리 숲내음이 좋다.

모든 것은 시간 속에 잠시 존재하고

잠시 머물다 사라질지라도

오늘은 나의 업대로

이곳에서 만큼은 마음 따라 살아 보련다.

 

 

식물명 : 투구꽃

꽃말 : 밤의 열림

아름다운 꽃이지만  맹독성이 강하여 조선시대에는사약의 재료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어젯밤 비에 꽃이 피더니

오늘 아침 바람에 꽃이 지네

가련하다. 한 해의 봄날이여

오고감이 비바람에 달렸구나

 - 송한필-

 

늘 곁에 두고 마음에 먼지가 낄 때마다 보고 또 보아야 할 것이다.

숲에서 자라는 모든 생명들은 하나의 가르침이고 깨달음이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단점은 무엇이고

나의 얼굴 표정은 어떠한가

저 꽃처럼 청초한 저 꽃잎처럼

미소 짓는 얼굴이었으면 좋겠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워질 때

그것은 나의 이미지이고

흐트러진 모습이다.

힘든 삶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저 물과 같이 깨끗하게 씻겨내며 살아 보자

내가 즐거우면 세상도 밝아지겠지.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를 느낀다.

계절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벌써 가을을 준비하는 때

가고 오는 계절의 이치

만나고 헤어지는 단순한 법칙들이만,

여지껏 변심으로 자연의 법칙을 어긴 적은 없다.

 

 

이 계절이 좋다고 마냥 부둥켜안고 있을 수만은 없은 일

여름의 정점을 이곳 칠선과 제석봉골에서 보냈다는 것에 감사하다.

 

 

 

소스라치게 불어대던 바람에도

세상 모든 것을 얼려버릴 것 같은 엄동설한에도

작은 물줄기를 시작으로 백무동의 큰 물줄기를 만들낸다.

 

 

 

지리산  / 정주용

 

아무 말이 없구나 스치는 바람소리 뿐

험난한 세월에도 쓰러지지 않았구나

반야봉의 새소리 백무동의 물소리

지친 영혼 어루만져 주는

그대 이름 지리산

아아 아아아 그대 이름 지리산

아무 말이 없구나

한걸음  또 한걸음

작은 돌맹이 하나도 쓰다듬고 싶구나

달궁의 별빛따라 반달곰 울음따라

너의 사랑 찾아 헤맨다

그대 이름 지리산

아아 아아아 그대 이름 지리산

아무 말이 없구나 풀꽃들의 미소 뿐

고난의 역사에도 흔들리지 않았구나

노고간의 구름 바다 피아골 단풍 바다

너를 보면 가슴의 뛴다

그대 이름 지리산

아아 아아아 그대 이름 지리산

그대 이름 지리산

 

 

여름은 여름이라 좋고

가을은 가을이라 좋다

좋고 나쁜 계절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가을을 참 좋아한다.

원래 태어난 달은 8월이지만

사물을 더욱 풍성하고 돋보이게 해주는 가을빛과

서늘한 바람이 한량없이 좋기 때문이다.

가을날 떠나 볼 여행 길

그곳이 어디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가을날에는 파란 하늘 올려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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