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용산
<박기동 작사 / 안성현 작곡 / 안치환 노래>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그리움 강이 되어
내 가슴 맴돌아 흐르고
재를 넘은 석양은
저만치 홀로 섰네
백합일시 그 향기롭던
너의 꿈은 간 데 없고
돌아서지 못한 채
나 외로이 예 서 있으니
부용산 저 멀리엔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
박기동(여수, 1917~2004) 시인은 한의사였던 아버지 덕에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내다 16세에 일본으로 건너가 영문학을 전공하였으며, 1943년 벌교초등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으로 벌교중과 목포항도여중(現 목포여고)을 거쳐 광주고등학교, 순천사범 등에서 국어와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이 시는 벌교로 시집을 간 누이와 애제자 김정희의 잇따른 죽음으로 만들어지게 된다. 24세의 젊은 나이에 폐결핵으로 쓰러져 죽은 누이동생을 부용산에 묻고 내려오다 누이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하고 애절한 마음을 달래고자 글을 썼다고 전해진다. 노래 부용산은 가사와 곡도 슬프지만 그 안에 숨겨진 내용은 순수함을 넘어 이데올로기로 인한 민중의 삶에 애환과 상처 그리고 치유될 수 없는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으며 그때의 시대적 상황을 노래로 대변하는 듯하다. 작곡가 안성현(1920~2006)은 목포항도여중에서 근무하던 중 박기동 책상 서랍에 있던 글을 읽고 곡을 만들어 대중에게 널리 불리게 되지만, 한국전쟁 이후 지리산에 숨어 활동하던 빨치산이 이 노래를 부르더니 결국 그들의 노래가 되고 만다. 그러던 중 무용가 채승희의 시집 조카이기도 한 안성현은 아내를 홀로 두고 그들과 함께 북으로 월북하게 된다. 85세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북한에서 공훈예술가로 활동하다 2006년 눈을 감는다. 안성현의 월북 이후 박기동 마저 사상을 의심받아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당국의 심한 감시와 수난을 당하며 살다가 시집 하나 내지 못하고 1993년 결국 호주로 이민을 간다. 나주 남평 드들강에는 김소월 시, 안성현 작곡 "엄마야 누나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안성현의 월북과 빨치산에 의해 금지곡이 된 부용산은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가을편지>가수 이동원이 음반을 취입하고 소설과 연극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우연히 듣게 되었는데 어느 방송국인가 모르겠지만, 부용산에 대한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방송으로 내보냈던 기억이 선명하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록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아 찾게 된 부용산.... M1고지를 눈앞에 두고서 부용정 정상까지는 오르지 아니 한다. 나는 부용정 아래 시비 앞에서 애잔한 노래를 들으며 산길 내려오다 말고 중도방죽과 소화다리(부용교)와 홍교를 바라보았다. 시대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벌교... 소설 태백산맥이 전하는 그 처참함은 우리가 영원히 기억해야 할 우리 민족의 아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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