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신지곡 계곡 트레킹 중 연하선경에서...
백무동을 출발하여 한신지곡 우골을 치고 올라 연하봉에 이르니
벌써 가을을 알리는 구절초로 뒤덮여 있다.
연하선경, 나는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 황홀하다.
그것은 나를 휘감은 쇠사슬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거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며
마음의 상처 또한 치유되는 듯하고
삶의 근심도 잊히는 듯하여서 좋다.
또 언제가 될지 기약할 수 없지만,
어쩌면
다시 이 길을 걷는다는 것도
먼 기약일 테지....
길
- 윤동주 -
잃어버렸습니다.
무엇을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엔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밤사이 상쾌한 아침이 내게 배달됐다.
눈을 뜨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소소한 일상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이지만,
얼굴에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 하루는 행복이다.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오며
홀로 있음을 깨닫게 되는 새벽
밤마다 나를 옭아매며 괴롭히던 여름도
이제 서서히 기억의 잔상으로 남으려는가 보다.
솔출판사에서 16권으로 발간한 박경리 대하소설 土地를
몇 날 며칠 날을 새며 읽어내려가던 중에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가 무척 궁금함에도
소설을 다 읽을 때까지 시간이 여의치 않아
끝내 가보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다시 두 번째
마로니에북스에서 21권으로 발간한
土地를 다시 접하는데
나는 이 책을 읽기 전 지난 번처럼
악양 들녘을 머릿속에서만 그려낼 수는 없어
벚꽃이 피기엔 아직은 이른 봄 하동을 다녀간다.
제2부, 하동 땅을 떠나 용정으로 이주한 최서희 일행
그들의 삶과 맞물린 시대적 배경 그리고,
암울했던 일제 말기의 역사적 배경.
요즘 극장가에는 영화 동주로 화제다.
그래서 나는 잠시 흑백 영화 <동주> 한 편과
송우혜 <윤동주 평전>에 시선을 돌린다.
고종사촌 청년문사 송몽규와 시인 윤동주
두 청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운명은
가슴 먹먹하도록 아리다.
개인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대적 상황,
이것 또한 길인가!
팔월 처서(處暑)를 하루 앞둔 오늘
연하선경 돌길에 핀 구절초는
애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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