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 위로 하늘이 맑다.

눈은 공간의 떨림까지 잡아낸다.

바람을 본다는 건

풀잎의 떨림이나 구름을 바라보는 것이고

바람을 느낀다는 건

내가 바람이 되고 바람이 내게 다시 물결로 되돌아 오는

작은 떨림 같은 것이다.

 

 

 

천년 숲길을 걸어 되돌아 오면서

하늘을 바라 보게 된다.

그 하늘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떠올리는

그리움의 하늘일 수도 있겠고

망상과도 같은 하늘이다.

파란 하늘이 뿜어내는 숨소리

미황사 넓은 뜰에 쏟아내는 햇살

모든 것들은 아늑하고 아득하다.

 

 

 

맞배과 팔작

직선과 곡선의 처마

막새로 흘러내림을 막고

용마루 등허리에 내 눈이 얹혀질 때

구름은 하늘바다에 잔잔한 물결로 다가와

마음을 취하게 한다. 

 

 

처마끝 풍경은 잠이 들었나 보다

 

 

처마 끝 풍경의 가녀린 파동

하늘 바다는 고요하다.

하늘에 묶인 물고기 한 마리

인간의 탐욕이 멈추는 날

살던 곳으로 돌아갈지어다.

하늘을 등지고 영겁의 세월 속에 누워 있는 산과 거친 암릉

천년고찰 미황사는 고요하다.

 

 

마음의 상처로 인해

더 이상 무슨 말로도 쉽게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땅에 떨어진 가을 낙엽 마냥 앞서 달려간 기억들

뒷걸음에 지워지는 발자국을 뒤돌아봄은 

그곳에 남겨 두고 온 시간 때문이리라.

 

지금껏 무수히 많은 길을 걸어 왔음에도

하늘을 보고 뒤돌아봄은

미련이고 지우고 싶지 않은 기억의 잔상이다.

 

이번에는 수미동에서 달마를 가잖다.

을씨년스런 바위와 날카로운 암봉

그리고 미황사....

 

일주문을 지나 돌계단에 발을 내딛는다.

아직 떠나지 않은 가을의 처절한 몸부림에

눈시울이 뜨겁다.

 

포근한 동백숲 길로 몸을 돌려 몇 발자국 옮기던 중

몸은 이미 달마 불썬봉에 있다.

칼날처럼 차가운 바람에도 식지 않은 바다

노화, 보길, 청산, 약산...

그리고 뒷편으로

희끄무레 펼쳐진 대지에 솟아 있는 내륙의 높고 낮은 산들

눈길 가는 곳 어딘가로부터

막연하게 불어오는 바람 한 줌에

심장이 뛴다.

 

소리가 들린다. 소음인가?

소음을 견디는 것보다

적막을 견디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는지

바람은 내 귀를 가만두지 않는다.

 

저 봄 언덕에 꽃이 피거나 말거나

저 가을 들판에 벼가 익거나 말거나

너 없이는 못 살아 하는 정든 소리... 

그 바람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삶은 각박하다

사람들의 마음은 거칠고 메마르다.

 

겨울비 내리는 아침

끝모를 처량함이 밀려온다.

왜 이리 바쁘게 사는지

나 조차 돌아볼 겨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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