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이 원규 詩, 안치환노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서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세석평전 철쭉꽃 길을 따라
온 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는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
지리산.. 고단함속에 녹아있는 그 절정의 짜릿함은 나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고 설레이게 한다.
오늘 지리산을 또 오른다. 장마기간이라 걱정 되기도 하지만 심장의 두근거리는 느낌을 안고
어둠의 화엄사를 지나 세석평전과 연하선경을 오르려 한다. 그 아름다운 길에 마음의 근심과
얽혀 있는 일상의 슬픔을 지우고 싶다. 한걸음 한걸음 발길 닿는 그 곳에 내려 놓고 오고 싶다..
그리고... 그곳을 간다.
오늘밤 지친몸의 고단함도 잊고 홀로 두번 째 무박화대종주 길을 다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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