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을 보내고 3.1절을 맞이하는 오늘 날씨는 더럽고 치사하다. 4월 국회의원선거를 앞두고 국회가 시끄럽다. 인터넷을 통해 관심 있게 지켜 보고 있던 필리버스터를 더민주는 3.1절에 중단할 것을 발표했고 언론은 기사 거리를 쏟아낸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이 돼버렸다. 어제는 먹구름 가득한 날씨에 눈발까지 날리더니 세찬 바람에 숨쉬기가 여간 힘들 지경이었다. 목구멍에 달라붙은 찰진 고뿔은 떨어질 줄 모르고 기분 나쁜 편두통이 미적거리며 불편한 내 속을 더 뒤집어 놓는다. 창밖의 태양은 눈부시고 따숩다. 가끔 내미는 저기 저 감칠 맛 나는 햇빛은 누구를 그리워하라는 건지. 햇살은 따뜻한 남쪽 나라로부터 꽃내음 바람에 실어 오는 듯하더니 내 살던 고향 시골집 너른 앞마당에도 살포시 내려앉는다. 담장 밑 한 움큼의 나른한 봄볕은 텃밭 손질하기에 좋은 날씨다. 게으른 누렁이는 사지를 힘없이 늘어트리며 물끄러미 엄마의 호미질을 바라본다.
생태보존이 잘 된 갯벌과 게르마늄 황토에서 자란 마늘, 양파는 무안을 대표한다. 겨울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란 양파는 다른 지역과 차별된다고는 하지만 살기 팍팍한 농촌의 현실을 대변하듯 매년 감소 추세에 있는 농가와 고령화는 내일을 불투명하게 한다. 하늘을 올려다봤더니 연거푸 긴 들숨과 날숨이다. 밭고랑 깊이 만큼 근심도 깊다는 얘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부터 전답은 집안 친척분에게 맡겨진 상태이고 엄마는 남의 일을 다니시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계신다. 엄마는 그게 더 마음 편하시단다. 농사일로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느라 식사 시간도 놓치고 애써 가꿔 온 채소와 곡류를 수확할 시기가 되면 판로예측이 빗나가 가격폭락으로 울상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농사일은 신경이 많이 쓰인 만큼 중노동이다. 그런다고 지갑이 두꺼워지는 것도 아니고 들어오는 돈이 얼마 되지 않다 보니 모아 놓은 것도 없다. 엄마는 주말에 가끔 찾아가는 손자에게 꼬깃꼬깃해진 쌈짓돈을 손에 쥐여주며 또 언제 다녀갈 거냐고 물으신다. 큰 아이는 구겨진 돈을 받기가 미안스럽단다. 그래도 할머니의 마음인지라 사양할 수 없다. 바람이 불어 길 건너 대나무 부딪히는 소리와 대숲의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좋다. 가슴 아리는 봄의 길목 3월이다. 봄이면 현경 가는 옛길은 늙은 벚나무가 하얀 터널을 만들어내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겨우내 알몸 들어냈던 붉은 황토밭도 싱그러운 초록으로 새로 단장하며 향긋한 새봄을 맞이할 것이다. 나는 그 거리에 다시 서 있다.
봄은 생명이 꿈틀거리며 숨을 내뱉고 봄내음 봄 향기로 가득하다. 엄마는 그런 봄을 좋아하고 꽃을 좋아해서 영양분이 다 빠진 화분을 갈아엎고 분갈이에 여념이 없다. 파릇한 기운이 대지를 뚫고 올라오는 마당 한 켠 작은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가 심어지고 싹이 자라 풀내음은 가득하다. 이 집은 내 삶의 성장판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엄마의 흐릿한 눈을 통해 꽃을 가꾸듯 삶을 이어온 곳이다. 엄마는 시력이 일반 사람들에 비해 좋지 않다. 그래서 돋보기처럼 두툼한 안경을 쓰시는데 안경 너머의 세상은 매우 고달팠다. 칠순에 가까워진 나이에 내려앉은 눈꺼풀을 볼 때마다 그의 얼굴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구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다. 안경으로 보여진 엄마의 세상은 항상 뿌옇다. 세상도 뿌옇고 살아온 삶도 뿌옇다. 이제 즐거움을 찾고 여유로운 삶을 살아갔으면 하는데 엄마는 그렇지 못하다. 사춘기 시절 어린 나는 시력이 안 좋은 엄마가 안경을 써야 한다는 것도 몰랐고 앞을 잘 보지 못한다는 이유 하나로 엄마가 미웠다. 설거지는 항상 두 번 세 번 더 해야 했었고 길 건너 멀리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그가 누군지를 내가 알려줘야 했다. 그러면 나는 <엄마는 그것도 몰라?> 시간이 흘러 아니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나는 자라 있었다. 무안읍에 나가 시력검사도 해 보고 안경 맞추라고 월급 받아 용돈을 드렸더니 여기저기 당장 필요한 곳에 써 버렸다.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직접 손을 붙잡고 안경원을 찾았다. 두툼한 렌즈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력이었고 밝은 세상을 보여 드린 날, 엄마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가득했던 그 날을 나는 잊지 못한다.
몸이 피곤하신가 보다. 초저녁인데 안경을 벗어 놓지도 못하고 곧바로 주무신다. 묵직한 안경을 벗겨 렌즈를 닦다가 내 눈에 가져다 댄다. 이건 뭐... 불투명 유리다. 엄마는 꿈속에서 무얼 하시길래 기척이 없다. 빛바랜 회색 테 고운 안경은 문갑 위에 얹혀져 꼼짝하지 않고 해지는 마당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그림자 하나 뵈지 않는 창밖, 해지도록 대문 앞에서 주인이 나오길 서성이는 누렁이가 눈에 들어온다. 엄마의 식구다. 과거와 현재 둘로 나누어진 시간. 그리워하는 데도 만나지 못하고 일생을 못잊고 살지만, 그날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하는 인연이 있듯이 나는 잠들어 있는 엄마를 보면서 동시대를 살았던 한 사람 분의 인연이 같은 공간에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지울 수 없는 기억이고 붙잡을 수 없는 허무일지도 모른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나와 이 공간이 너무도 쓸쓸하다.
결혼하고 고향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다. 그리워 다시 그 거리에 서면 나는 무얼 할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낡아 찢어진 비닐하우스에 황량한 겨울바람 불어오면 그때의 시간은 사라진지 오래됐다고 들려올 것이고 소중하지 않았던 기억은 간 곳 없고 잊을라치면 그 거리에서의 이별이 시작되고 또 하나의 아픔이 더해진다. 고향이 좋다. 낡고 헤진 그 거리가 좋다. 잊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잊기 어려운 그 거리의 분위기 속에 함몰된 추억의 앨범을 뒤적거려야 하는 삶이 더는 날 그냥 놔두지 않는다. 그래서 빛바랜 사진이 좋아진다. 명치 끝이 아파오는 통증으로 열병 앓듯 긴 밤을 보내는 요즘. 고향을 잠시 찾은 이 시간은 언제나 잊지 못할 찬란한 봄이다. 흘러가는 시간이 서글퍼 한껏 끌어안는 지금에서야 깨닫는다. 시들어가는 꽃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는다. 아직은 햇빛에 반 할만 하고 깃털처럼 부드러운 촉감으로 대신하는 향기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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