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내고개에는 벌써부터 찬바람이 불어댄다. 능동산을 시작으로 해발 1천미터가 넘는 영남 알프스 산군에 운집하고 있는 천황산(사자봉)과 재약산(수미봉)은 하늘공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가지산과 신불산 등 한국의 100대 명산 명성에 걸맞게 웅장한 주변 산세와 더불어 자연경관이 참으로 아름답더라. 가파르지 않고 천황산까지 완만히 이어지는 오르막 길, 마치 평지를 걷는 듯하여 하체의 잔근육은 제대로 힘을 써 보지도 못하고 은빛 하늘공원에 머물다 왔다.
그날은 봄날의 평온함처럼 한적함이 깃들어 있었으며 높은 산이었다는 것을 잠시 망각할 정도로 산빛에 그리움이 아득히 먼곳에서 밀려 오기도 하고 옷자락을 붙잡는 여유로운 바람도 마음 편히 쉬어 갈만한 천황재의 평온한 억새 평원을 지나니 어느덧 재약산 최고봉을 오른다. 내 놀이터의 하늘을 닮은 듯 여름날의 그 하늘은 아니지만 고개숙여 다니지 않아도 그날은 한결 마음편한 그런 하루였다. 가는 내 앞길을 막는 것은 은빛물결의 억새 뿐이요 가을하늘의 향기로움 뿐이었으니..,
청명하게 맑았다가도 순간 먹구름은 하늘을 덮는 그늘막 텐트가 되기도 하고 끝내 내 발길이 닿는 하산길까지 쫒아왔다. 금방이라도 비를 퍼부을 것만 같은 찌뿌둥한 하늘은 마지막까지 요지부동한 모습을 보여줬다. 생태복원 사업이 한창인 재약산 고층습지 넘어 시원스레 펼져진 매혹적인 신불산의 산머루가 마음을 유혹한다. 간혹 영남알프스의 고독한 바위에 잠시 걸터 앉아 숨을 고르고 있노라면 잔잔히 물결치는 억새의 몸짓에 흥이 돋아 태양빛에 웃어주는 들꽃의 인사가 반가워지고 하늘을 선회하며 산을 지키는 산새들의 노래를 듣곤 한다.
산빛에 그리움은 일렁이고 가을을 덮는 햇살은 눈이 부시다.
억새의 녹음은 대지를 뒤덮은 비단 솜털과도 같은 것이며 여름동안 대지를 뚫고나와 꽃대를 피워내기까지 차라리 처연하다.
내 눈에는 흑심이 가득하다. 아름다움이 무엇이길래 내 영혼의 살을 베는 예리한 칼날을 들이대는 것일까!
메마른 감정의 대지에 포근한 한숨 불어 넣은 가을 햇살을 기대했건만, 그 빛에 출렁이는 은빛 향연을 기대 했건만, 인정이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이 가혹하도다.
나는 단호히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야 사진을 들여다 보며 그것은 헛된 욕심과 스스로가 도단에 빠졌음을 알았다.
사자평에서 바라본 방왕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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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았다. 은빛 불길 속에서 숨막히도록 아름다운 기쁨의 꽃밭을...
감정의 심한 기폭만큼이나 난잡한 감수성을 끄집어내 우는 내 어지러운 발자국들은 언젠가 돌아보면 헛된 망상에 쓰여진 일기장이 아닌 칼날처럼 살을 베이는 고통으로 살아가야 하는 고독한 청춘을 아름다운 봄날로 채우고 행복의 날들로 기억되고 싶다. 깊어가는 10월의 어느 밤 불혹을 넘어선 내가 눈물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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