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等에 오르던 구월의 어느 날, 10월이 코앞에 있는데도 여름의 막바지에 서 있는 것처럼 그 열기가 심상치 않다. 집을 나설 때는 분명 초가을 새벽을 맞이 한 것 같았는데 중머리재를 향하는 숲길에는 초록의 향기가 짙게 배어 있고 나무가지 사이로 내비치는 부드러운 아침햇살과 더불어 산 그늘은 어둡다. 이렇게 시작되는 일상의 나의 삶, 세월 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주름이 생기며 나이라는 주름은 또 다른 이름으로 세월 한자락을 또 끄집어 낸다. 2014년 9월도 다 지난 끝자락이며 다시 오지 않을 그 9월 앞에서 서성이다 계절에 빠져든다.

 

 

 

작년 이맘 때 올라왔던 무등산을 올해 다시 찾았다. 장불재와 중봉 평원에 펼쳐진 억새의 고즈넉한 가을을 만킥하기 위해 사람들의 행렬은 늦은 시간까지 끝이 없다. 무성한 잡초 사이로 고개를 내민 구절초와 쑥부쟁이는 이곳 서석대의 양지바른 곳에서 해맑은 웃음꽃을 피우고 나약한 몸뚱아리는 가을바람에 온 힘을 다해 버텨내며 나풀거린다. 나는 발걸음을 멈추어 수많은 사람들이 걸었을 길가 풀숲에 고개를 들이밀고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죄없는 풀을 아무 생각없이 한움큼 잡아 힘껏 뜯어낸다. 내 손에 힘없이 뜯겨진 까칠한 풀은 손가락 사이 빈틈없이 가득하고 손톱 끝은 금새 퍼렇게 풀물이 든다. 어릴때부터 맡아왔던 신선하고 향긋한 풀향기는 코끝을 자극하더니 향수를 불러 일으킨다. 날카로운 것에 몸이 베이는 순간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지만 풀은 비명대신 향기를 내뿜는다. 내 손과 들판, 산을 물들이는 초록의 상처, 그 상처가 내뿜는 향기에 취해 잠시나마 나는 고단함을 잊는다. 가끔 맑게 개인 파란 하늘 하얀 뭉게구름을 바라볼 때 상처의 아름다움이 저토록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탄식한다.

 

 

 

입석대 아래 장불재의 큰 돌덩이... 식사를 즐길 만한 장소를 찾던 중 서너 명이 족히 걸터 앉을 수 있는 평평한 바위를 발견하고서는 질펀한 엉덩이를 내려 놓는다. 허기를 채우고 있는 사이 발밑에 초연하게 피어있는 쑥부쟁이가 눈에 들어온다. 송신탑을 향해 앉아 서석대를 응시하는 동안 구상나무숲과 입석대에 몽실몽실 하얀 구름이 몰려오는가 싶더니 이내 산을 뒤덮어 버리고야 만다.

 

 

 

 

 

 

 

 

 

 

 

 

 

낯이 익다고도 그렇다고 낯설다고도 할 수 없는 일상의 그날,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깨우지 않아도 알람시계가 울리지 않아도 습관적으로 먼저 눈을 뜨게 된다. 태양은 기울고 그림자의 길이도 시간이 갈수록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진다. 매일 같은 시간에 집을 나서는데도 유독 오늘 새벽은 어둡다. 새벽 출근길이라 말끔히 차려 입는 옷은 아니지만 평소와 다를바 없이 회사에 출근 할 때면 늘 정해진 소박한 옷을 입고 집을 나선다. 특별할 것도 없는 하루의 식사를 해결하며, 특별히 만나는 사람도 없다. 약속이 있을 때도 아주 중요한 만남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는 것이 때로는 부질없음을 느껴지기도 한다. 이처럼 나는 단조로운 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의 삶을 되돌아 보면 어느덧 일주일이 되고 나도 모르는 순간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정말 무의미하게 흘러가버린다.

 

주말 아침 새벽 수영을 하고 산에 갈까! 아님 일출을 보러 일찍 떠날까 하는 고민 끝에 일기예보를 따르기로 한다. 모니터에 보여지는 한반도 남부지방의 위성사진은 잔뜩 흐린날씨다. 그런데 무등으로 향하는 아침 하늘은 티없이 맑더라... 증심교를 지나 산을 오르는 이른 시간임에도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 쪽으로 밀려 내려온다. 상기된 얼굴을 보니 분명 백마능선을 타고 떠오르는 일출을 보았을 것이다. 나는 굶주린 하이에나 처럼 천천히 잃어버린 무언가를 찾듯이 숲길을 걷기 시작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바람이 사방에서 불었다. 표정도 없고 냉랭하기 짝이 없는 무표정하고 건조한 바람이었다. 나는 바람을 따라 지그재그 흔들렸으며 바람 궤적을 쫒고 훑으려 안간힘을 쓴다. 아침 태양 만큼이나 희망이 가득 하였던 지난 젊은시절에 비하면 삶에 지친 몸으로 앞으로만 걸어야 하는 지금의 내 어깨가 무겁다.

 

남은 날들의 숫자 앞에서 두려워지는가.... 아직 내가 살아갈 만큼에 생명의 불꽃은 화려하게 세월의 남은 끝자락을 태우고 있는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서석대 하늘에서 도시를 바라 본다. 도시는 오늘도 살아 숨을 쉰다. 그리고 나는 그 안에 있지만, 나는 아직 산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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