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뀌는 무렵
밤이면 풀벌레의 요란한 울음소리에

가을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왔음을 느낀다.
근래 나이 사십을 넘어 철이 바뀌는 것에 민감하다.

달력의 숫자로 세월의 나이를 세어보려 해도

세월에 좀먹어 노쇠해지는 몸뚱아리의 안타까운 현실과

차츰 희미해져가는 기억들로 인해 마음이 서글프다.

 

 

자신을 위로하고자 하는 마음에

산이나 물을 찾아 자연과 친숙해지는 시간 

세상의 한숨과 시름들을 그곳에 내려 놓을수록

일상은 평온해지고 행복으로 다시 채워진다.

 아직은 어둠이 짙은 새벽 사람들은 깊은 숙면에 취해 꿈을 꾸고 있다.

이른 시간의 한적하고 무정할 정도의 한산한 새벽은

나에게는 즐거운 고독이기도 하다

 

 

 어제 준비해 놓은 배낭을 둘러매고 지리산으로 향한다.

계절을 맞이하러 가는 길이다.

 

 

세석 아래 한신 깊은 상류에서 이곳 백무동 하류까지

 하얀 포말을 만들어 내며 흘러내리는 시원한 물줄기와 음이온의 색깔에

아직 짙은 여름이 있음을 느끼게 한다.

 

 

 

 

어릴 때 추석 무렵이면 나락을 베고 콩을 타작하여 들이고

감을 따고 시래기를 만들어 널고 하다 보면 찬기운이 감돈다.

어느새 가을 걷이를 마친 마을 어른들은 리어커를 끌고 겨울 땔나무를 하러

고향의 야트막한 감방산과 야산을 돌아다니고

아침 저녁 학교 오가는 길에 서릿발이 밟히고 동네 어귀 양지바른 담벼락에 기대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순간 겨울이 왔음을 우리는 느꼈다.


 

 

마침내 된서리가 풀잎을 삶아 버리고 추색이 짙어질 무렵이면

이곳 한신의 물줄기 위로 뻗은 나무가지와 잎을 보면서

사람들은 가을을 노래하며 아름다운 시를 읊겠지!!

 

 

 

바람이 부는데 무슨 뜻이 있으랴

낮은 곳으로 흐르며 고요함을 깨뜨리는 자연의 물소리와 내면의 울림이 그저 좋을 뿐... 

 

 

한신계곡 가내소폭포의 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채 건너가고 있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말매의 셋째 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道)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 하고 이곳을 떠났다하여

폭포 이름을 "가내소"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천천히 그리고 더딘 걸음으로

햇살 밝게 비쳐드는 여름의 짙푸른 숲과 한신계곡을 오른다.

이끼붙은 바위에 수줍게 자란 이름모를 야생화의 하얀 꽃 앞에서 걸음도 멈추고

점점 산의 생명들과 동화되어 가는 시간

세석까지 얼마남겨 두지 않은 구간에서 가파진 호흡과 하체의 고통으로

오르다가도 멈춤기를 반복,,,

산행초보 2명은 힘겨운 고통이다.

 

 

 

가거라... 시련들이여~~~

 

 

새벽 짙은 안개로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으려나 하는 걱정은 말끔히 사라지고

한신의 울창한 계곡의 서늘한 그늘에서 벗어나

이곳에 도착할 무렵에는 햇살이 너무도 반갑다

자신을 보여주기 싫었던 것일까!.

촛대봉에서 바람에 등떠밀려 내려온 구름은

세석을 넘기 싫은 표정으로 앉은벵이 춤을 추며 한순간 몰려온다.

 

 

 

오월, 이곳을 오겠다던 약속은 못 지켰지만

팔랑치와 바래봉을 붉게 물들였던 서북능선으로 옮긴 발걸음

그 맑고 아름다웠던 꽃 향기 폐속으로 깊게 들이켜 본다. 

 

 

 

 

세석평전을 뒤로하고 연하선경의 아름다움을 맞이한다.

때로는 바람에 밀리고 시시각각 달라지는 구름의 모습에

우리가 걸어가는 길도 연하선경을 뒤덮은 저 구름과 같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흐르는 것이 어디 세월뿐이겠는가...

걸어온 길과 앞으로 가야할 길 그리고 다가올 미래의 길 모두가

한 시대에 뭍혀 바람과 같이 흘러가는 것을

 

 

 

 

하체에 근육 경련이 일어날 무렵 천왕봉에 이른다.

산은 높고 사람은 말이 없다.

잠깐이면 오르지만 비어가는 술병마냥 술에 취한 듯 몸은 변신을 거듭한다. 

 

 

한신계곡의 아름다움에 쉽게 반하고 급경사 오르막에 속았지만

천왕봉에 가까워지고 이곳에 이르는 순간 모든 것을 보상 받았으니

뒤뚱거릴 정도의 고통스런 하산길쯤이야...

 해난구조대 SSU 원경과 병동을 지키는 빨간모자 효진의 동행은 아름다웠다. 

 

 

 

 

 

 

 

 

 

춤추는 운무의 향연을 감상하는 중..... 

 

 

자욱한 푸른 물감의 안개가 걷히고 한 여름 장마도 지나고 나면

이제 긴 여름도 막바지로 접어든다.

 

 

 

 

산에 자란 구절초....

여름 동안 마구 자란 것 같지만 해마다 그 규칙은 어긋남이 없다.

여름에서 가을로 이어지는 동안 해는 꽃이 피기를 재촉하더니

어느새 가느다란 꽃대를 밀어 올리며 꽃을 피워내고 

또 한 시즌의 피날레를 장식하였다.

 

나는 여름의 끝무렵 가을을 마중하러 지리산에 올랐다.

그리고 계절이 들려주는 삶의 소리를 듣는다.

산다는 것은 아름다움이며 세상을 느끼는 향기로운 마음이다.

마음 꽃 향기는 이 세상 한 송이가 피워내는 감미로운 빛깔의 꽃과도 같으며

내 마음 아니고서는 세상 어디에 자라지 않는

마음에서 피고 지는 꽃이다. 

 

 

 

 

그리하여 다시 또 올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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